“창피했던 도시락 김치 냄새, 이젠 부러움 대상”

입력 2023-11-13 04:05
론 김 미국 뉴욕주 하원의원이 2일(현지시간) 뉴욕 플러싱 사무실에서 ‘김치의 날’ 선포문을 보여주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뉴욕주가 미국에서 세 번째로 김치의 날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다.

“최근 한국 문화의 모멘텀(기세)은 정말 강하다. 이렇게 여러 분야가 동시에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은 처음 본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플러싱의 의원 사무실에서 만난 론 김(44) 뉴욕주 하원의원은 뉴욕의 한인 사회를 대변하는 대표적 ‘한인 정치인’이다. 이민 1.5세대인 그는 최근 미국을 강타한 한국 문화 열풍에 대해 “K팝, 드라마, 음식 등 모든 한국 문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K-컬처가 상호작용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흥미를 키워 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의원은 특히 “그 문을 열어준 건 한국 음식”이라고 말했다.

8살 때 미국에 건너온 그에게 한식은 ‘김치 냄새’로 대표되는 창피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는 뿌리를 숨기는 대신 자랑거리로 만들어냈다. 지난해 뉴욕주가 미국 내에서 세 번째로 제정한 ‘김치의 날’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이제는 김치가 미국 사회가 한인을 포용한다는 상징이 됐다”고 김치의 날 의미를 설명했다. 뉴욕의 한인 학생들에게 김치 냄새는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은 “나는 부모님께 도시락에 치킨만 넣어 달라고 했지만 딸들은 김치를 싸 가면 친구들에게 ‘맛있겠다’며 부러움을 산다”고 말했다.

김치 외에도 다양한 한국 음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뉴욕에서만 한국 식당 11곳이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리며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도 달라졌다. 김 의원은 “김치를 시작으로 이제는 한식 전체가 성장하고 있다”며 “더 자랑스럽게 내 뿌리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꾸미지 않은 한국 본연의 매력을 해외에 알려 달라는 조언도 남겼다. 김 의원은 “최근 행사로 천안을 방문했는데 (식당이나 거리에) 영어가 적혀 있지 않거나 철자가 틀린 모습이 오히려 ‘진짜 한국’처럼 다가왔다”며 “외국인이 보기엔 그런 모습이 더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한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김 의원의 행보는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0년 그는 뉴욕주 공립학교에 3·1 운동과 유관순 열사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는 ‘유관순의 날’ 결의안 제정에 앞장섰다. 김 의원은 “한국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목표를 묻는 말에는 “한국 문화·음식의 영향력 확대를 사회적 영향력 확대로 연결해내고 싶다”고 답했다.

뉴욕=글·사진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