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필리버스터 전격 철회… ‘이동관 구하기’로 전략 수정

입력 2023-11-10 04:07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표결 전에 집단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리는 비어 있다. ‘노란봉투법’은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만 174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73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최현규 기자

국민의힘이 9일 더불어민주당의 ‘노란봉투법·방송3법’ 강행 처리에 맞서 준비했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를 철회했다. 민주당이 이날 발의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무산시키기 위해 ‘숨겨둔 한 수’였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 위원장과 이정섭·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잠시 후 본회의장에서 전원 퇴장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까지만 해도 오는 13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그러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퇴장 후 본회의장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려는 악의적인 정치적 의도를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해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이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동관 지키기’에 주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버스터 철회 결정은 철통 보안 속에 이뤄졌다. 윤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 아침에 결정했다.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다”며 “보안 유지가 안 되면 안 되는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또 “점심시간 직전까지 민주당과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방통위원장 탄핵안은 상정 말아 달라’고 정말 사정했다”며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플랜B’ 가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 초선 의원은 “의원들도 끝까지 몰랐다”며 “윤 원내대표가 민주당에 한방 먹였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 표결이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이뤄져야 하고, 이후에는 폐기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이 이날 국회를 통과해 본회의가 산회되면 여야가 합의했던 다음 본회의는 오는 23일이나 돼야 열린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이럴 경우, 72시간이 훨씬 지나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은 자동 폐기된다.

국민의힘은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 다시 발의할 수 없도록 한 ‘일사부재의의 원칙’까지 계산했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는 오는 12월 9일까지인데, 적어도 이 기간에는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이 다시 발의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던 셈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 직후부터 72시간 내 본회의를 다시 열거나, 이 위원장에 대해 별도 사유를 근거로 한 탄핵소추안을 다시 발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본회의 산회 직후 김 의장을 만나 72시간 내 추가 본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간 합의 없이 본회의를 연다는 건 또 다른 무리수”라며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