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66·사법연수원 13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9일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보수 색채가 뚜렷한 판결을 다수 내놓은 조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이 되면 법원 보수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답변이다.
조 후보자는 후보 지명 이튿날인 9일 안철상(66·15기) 대법원장 권한대행과의 면담을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방문했다. 2018년 1월 임기를 시작한 안 권한대행은 2020년 3월 퇴임한 조 후보자와 동료 대법관으로 2년 정도 임기가 겹친다. 두 사람은 면담 자리에서 덕담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 후보자는 면담 직전 기자들과 만나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법이 없는 것이 참다운 법’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 대법관 취임사에서도 우리 두 눈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보는 법이라고 했었다”면서 “(사법부 보수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조 후보자는 대법원 방문 전 개인 자격으로 현충원을 찾았다. 그는 방명록에 ‘안민정법(安民正法) 조희대’라고 적었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바른 법’이라는 뜻으로 후보자가 대법관에서 물러나면서 엮은 판례집 제목이다.
조 후보자는 애초 윤석열 대통령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제안을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후보자 지명을 다시 수락한 계기를 묻는 말에 “중책을 맡기에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 “한 차례가 아니라 수천,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법부는 물론 나라와 국민들에게 혹시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고 떨리는 심정이었다”며 “어깨가 많이 무겁다.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차기 대법원장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최대 현안인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양승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를 거치며 심화한 ‘사법의 정치화’ 논란도 극복해야 한다. 재판 결과에 법관의 정치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는 ‘정치 편향’ 논란을 해소하고, 사법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 후보자는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사법부 구성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법원행정처는 즉각 안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 후임 인선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년 1월 퇴임하는 두 대법관의 후임이 공백기간 없이 정해지려면 이미 지난달 초에는 인선 절차를 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달 6일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관련 절차가 모두 뒤로 밀렸다. 내년 2월까지는 대법관 2명 공백 사태가 이어질 예정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새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고유권한인 대법관 임명제청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대법관 공백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