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병원서 마약류 의약품 174만개 사라졌다

입력 2023-11-10 04:06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 소홀로 최근 4년간 폐업한 의료기관들이 보유했던 마약류 의약품 174만여개가 관리망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상당량의 마약류 의약품이 불법 유통에 노출됐을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식약처 정기 감사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이번 감사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마약류 의약품 관리 등에 대해 초점을 두고 진행됐다.

식약처는 2018년부터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의료기관이 폐업할 때는 재고 마약류 의약품을 다른 의료기관이나 도매상 등에 양도·양수하고 이를 식약처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 결과,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폐업 의료기관 920곳이 보유하던 마약류 의약품 174만여개에 대한 양도·양수 보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추적이 불가능해진 마약류 의약품에는 펜타닐과 레미펜타닐 4256개, 프로포폴 7078개, 졸피뎀 9만4594개 등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식약처는 지방자치단체와 현장조사 등을 하지 않고 있어 상당량의 마약류 의약품이 국가 감시망에서 이탈되고 불법 유통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폐업 의료기관 13곳을 대상으로 표본(샘플) 조사도 실시했다. 이 결과 5곳은 폐업 후 마약류 의약품을 분실 또는 임의 폐기했다고 주장해 불법 유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남구 소재 A의원은 2020년 5월 폐업하며 재고로 보유하던 프로포폴 등 1936개를 타 기관에 양도하지 않고 관할 공무원 참관 없이 임의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경북 포항의 B의원도 같은 해 9월 폐업하며 보관하고 있던 향정신성의약품 2만7000여개를 분실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이들 5곳에 대해 고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특히 프로포폴 폐기량을 허위 보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 식약처가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프로포폴 등 앰플 단위로 포장한 주사제 의약품은 환자의 몸무게나 나이에 따라 사용량이 달라 포장을 뜯은 후 잔량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잔량 폐기량이 없다고 보고한 경우는 허위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감사원이 10곳을 샘플 조사한 결과 5곳에서 프로포폴 사용 후 잔량이 약 33만㎖(약 4만7544명분)으로 추정됐다. 식약처는 감사 결과에 대해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폐업병원과 거짓 보고 의심 의료기관 등의 마약류 의약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