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일이 우리 사명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뿌린 ‘희망의 씨앗’이 결실을 맺고 있다. 2년 전 고인의 유지에 따라 유가족이 서울대병원에 기부한 3000억원을 종잣돈 삼아 시작된 소아암과 소아 희귀질환 극복 사업이 3년째 성과를 내고 있다.
8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기부금을 재원으로 2021년 5월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이 꾸려졌다. 2030년까지 국내 소아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전국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표준 치료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다. 어린이 진료를 하는 전국 170개 의료기관, 1071명의 의료진이 동참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아암·희귀질환 진단 및 연구 3984건, 치료·연구 2336건이 이뤄졌다. 공동DB 기반 치료 플랫폼을 통해 6193건의 희귀질환 코호트(동일 집단)가 등록됐다.
4년 전 혈액암인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은 유리(가명·17) 가족이 힘겨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사업단의 지원 덕분이다. 유리는 고된 항암 치료와 2년 만의 재발, 조혈모세포 이식을 잘 견뎌냈다. 특히 재발 예측을 위해 미세 잔존암 골수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회당 1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버거웠다. 사업단은 7회 검사비를 무상 지원했다. 간호사가 꿈인 유리는 “다른 친구들도 과거의 나처럼 많은 지원을 받아 긍정적인 마음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10만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유전질환인 ‘당원병’을 앓는 정우(가명·5)는 적정 혈당 유지를 위해 좋아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맘대로 먹을 수 없다. 저혈당 쇼크 위험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채혈해 혈당을 재야 하는 고통이 컸다. 그러던 중 사업단에서 채혈 없이 손쉽게 혈당과 생활 리듬 확인이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를 지원받았다.
김한석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장은 이날 3년간의 성과를 공유하는 심포지엄에서 “그동안 환자 데이터가 분산돼 진단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전국 권역별 협력 네트워크로 모은 데이터를 통해 표준화된 치료법을 정립하고 전국 환자 모두 동일한 의료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선순환 체계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