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이 내 인생을 끌고 가시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마음과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생이 돼서도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했고 밤에 집에 가기 전에도 교회에 들러 기도하며 주님을 불렀다. 평일에는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목사님 설교 중 잠언 12장 24절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비록 남보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두뇌를 가졌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면 주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실 거라 믿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온전히 교회에서 봉사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달동네에 있었다. 교회에서 내가 첫 대학생이었고 전도사도 없었다. 일꾼이 부족하다 보니 담임목사님은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내게 학생회 지도교사를 시켰다. 나는 성가대에서도 활동했고 교회학교 교사로도 섬겼다.
직책을 맡았으니 최선을 다하자 싶어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책방인 종로서적에 가서 유명 목사님 설교집을 샀다. 설교 원고를 공부하고 여러 번 연습해 주일 설교를 했다. 나는 희망이 없는 아이들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믿음밖에 없고 그들에게 올바른 인생을 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주님 말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18명이던 중고등부 학생회가 85명으로 늘어나는 부흥도 경험했다.
학생회가 부흥하자 목사님은 “이번에는 주일학교 부장으로 섬겨 보라”고 했다. 주님은 이번에도 100여명으로 시작한 유년 주일학교 학생이 300여명으로 늘어나는 부흥의 은혜를 허락해 주셨다. 당시 교회 친구들과 성도들은 내가 하도 열심히 교회를 섬기니 목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은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려 했다. 그런데 카이스트는 모든 지원자에게 건강진단서를 요구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결핵이 발견됐다. 의사는 최소한 1년은 학업을 중단하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몸무게가 53㎏으로 마르긴 했지만 특별히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 진학까지 포기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지난 4년간 헌신을 다해 공부하고 사역하고,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그토록 마음과 정성을 쏟았건만 왜 내게 이런 병을 주셔서 학업까지 중단시키시는지. 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네 집이 운영하는 경기도 안성의 한 농장에서 1년을 지내며 건강을 돌봤다. 좋은 공기와 농장 할머니가 해주시는 식사, 부모님이 챙겨 주신 건강식으로 유유자적 지냈다. 그 시간은 내 신앙과 인내를 굳건히 하는 시간이었다. 결핵이 언제 나을지도 모르고 더구나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져 온 믿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1년간 착실히 몸을 회복해 1980년 건국대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내가 미국 유학과 교수 생활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체력을 기를 시간을 주셨던 것이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