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4분기 전기요금 ‘산업용’만 인상 추진

입력 2023-11-08 04:05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200조원이 넘는 한국전력공사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물가 폭등 우려를 고려해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과 소상공인이 사용하는 일반용은 유지한 채 산업용(을) 요금만 일단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용도별로 차등을 두고 요금을 올리는 방안이 전력시장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여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4분기 산업용(을) 요금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전기요금 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전기요금을 용도별로 책정하고 있다. 산업용 요금제는 광업·제조업과 기타 사업에 전력을 사용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통상 계약 전력이 300㎾(킬로와트) 이상인 경우에 적용된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의 54%를 차지했다. 반면 주택용과 일반용은 각각 15%, 23%가량이다. 전체 전력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경우 한전채 발행 한도를 초과하지 않고 한전의 재무구조를 일부 완화할 수 있다.

여당과 기획재정부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찬성하는 모양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과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당은 가정용·업소용 전기요금은 동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치솟는 물가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기재부는 산업용 요금이 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 기준에서 제외되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물가와 한전 적자 해소 사이에서 접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여론 반발 최소화’와 ‘한전 재무구조 개선’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산업용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정부의 요금 차등 인상안이 전력시장 왜곡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에너지 원가가 올라간 만큼 소비자도 일정 부분 이를 부담해야 하는데, 산업용 요금을 쓰는 기업에만 책임을 지우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요금 차등 인상이 계속 이어질 경우 일반 소비자를 설득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의 판매단가는 ㎾h(킬로와트시)당 각각 121.3원, 118.7원이었다. 대규모 전기를 쓰는 기업이 일반 가정과 비슷한 요금을 내는 것은 원가 구조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4분기에도 산업용 요금을 주택용보다 배 넘게 올렸다. 이에 따라 올 초에는 4년 만에 산업용 요금이 일반 가정 요금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한전은 한전KDN, 한전원자력원료, 한국전력기술 등 자회사의 지분 일부를 민간에 매각하고 본사 직원 약 2000명을 감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전의 대규모 정원 감축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전은 서울 공릉동 인재개발원 매각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