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릴 판에 무슨 필리버스터냐”… 與주자 60명 중 중진은 1명

입력 2023-11-08 04:07

더불어민주당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다. 국민의힘의 반대로 국회는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장시간에 걸친 연설 등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설 의원 60명을 모았다. 그런데 3선 이상 중진 의원은 권성동 의원(4선·강원 강릉) 단 한 명만 나선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중진 의원들을 향해 내년 4월 총선에서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압박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중진들은 ‘내가 잘리게 생겼는데 무슨 필리버스터냐’ 하는 기류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쌍특검’(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특검)의 본회의 표결을 앞당기겠다고 경고하는 등 여야 대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요한 혁신위’에 대한 반발로 전투력이 확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9일 본회의에 나설 필리버스터 주자 60명을 모두 채웠다. 이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할 경우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국회 통과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신청 의원 60명 가운데 중진 의원은 노란봉투법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권성동 의원 한 명뿐이다. 친윤(친윤석열)계 윤한홍·이철규 의원(이상 재선)도 나서지만, 권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59명은 전부 초·재선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관행적으로 필리버스터에 초·재선 의원이 많이 나서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3선 이상이 한 명인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은 “뒤숭숭한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야당이었던 2020년 12월에는 민주당의 공수처법·국정원법·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맞서 주호영(5선)·김기현(4선·현 당대표)·김태흠 의원(3선·현 충남지사) 등이 줄줄이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당시 김기현 의원은 3시간, 김태흠 의원은 2시간39분, 주 의원은 26분간 각각 연설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필리버스터 참여가 예상보다 저조하자 모든 초·재선 의원이 의무적으로 3시간 이상 필리버스터에 동참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원내지도부는 또 소속 의원 전원을 4개 조로 편성해서 9일부터 14일까지 돌아가며 4시간씩 본회의장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아무리 국민의힘이 사력을 다해도 민주당의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강행 통과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는 24시간까지는 보장되지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100명)이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를 제출하고 24시간이 지난 뒤 재적의원 5분의 3(179명) 이상 찬성하면 종결해야 한다. 민주당을 비롯해 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당과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까지 모두 합치면 183명으로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수 있다.

중진 의원들의 극히 낮은 필리버스터 참여와 관련해 다른 이유를 대는 의원도 있었다.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잦아지니, 이번에도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의원들 사이에서 만연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종선 박민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