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모르는 슈퍼 엔저… 사흘 새 엔테크 5000억 몰렸다

입력 2023-11-08 04:08
지난 6일 원·엔 환율이 15년9개월 만에 가장 낮은 860원대를 기록하는 등 엔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시스

일본 엔화 환율이 연일 바닥을 기고 있다. 일본 금융 당국이 ‘나 홀로 통화 완화’ 정책을 이어가는 한편 원화는 강세를 보인 결과다. 환율이 유리할 때 투자나 여행 목적으로 엔화를 모아두는 사람이 많아졌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날 100엔당 원화 환율은 867.59원으로 15년9개월 만에 처음으로 860원대를 기록했다. 이날 소폭 상승해 다시 870원대로 올랐지만 당분간 기록적인 엔저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온 미국과 달리 일본은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반면 원화 수요는 탄탄하다. 한국의 수출 지표가 개선되면서 대외 불안심리가 약해진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지난달 수출액은 551억 달러(약 71조8500억원)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 이상 증가했다. 수출액은 지난해 9월 이후 13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하며 성장 엔진이 식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킨 상황이다. 지난 6일 공매도 전면 금지로 한국 증시가 강하게 반등한 것도 일시적이지만 원화 강세를 이끌었다.

이에 따라 은행권 엔화 예금 잔액은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3일 1조636억엔(약 9조2300억원)으로 지난달 말(1조85억엔) 대비 551억엔 급증했다. 사흘 새 5000억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9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한 달 새 증가한 금액(201억엔)의 2배를 넘는다. 향후 엔화 강세를 노린 일본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도 인기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출시한 일본 증시 추종 ETF ‘에이스 일본 닛케이255(H)’는 지난 3일 기준 연초 대비 30% 넘게 올랐다.

역대급 엔저 호황에 일본 기업도 환율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특히 일본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지난 4~9월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0% 상승했다. 이는 한국의 수출에 중장기적인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저 호황이 길어지면 일본 기업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여러 산업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 불리하다.

다만 엔저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일본은행(BOJ)은 지난달 말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폭의 ‘1% 상한선’을 없애겠다고 밝힌 상태다. BOJ는 그동안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1%를 넘지 않도록 해왔는데 앞으로는 일정 수준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0.955%로 2013년 5월 이후 약 10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이 유동성을 조이는 긴축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해석이다. 외환시장에서는 BOJ가 내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철회하고 금리를 연 0~0.1% 수준까지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