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의 파고가 깊어지는 가운데 내년도 경영 구상에 돌입한 재계 총수들의 ‘사법 리스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둘러싼 민·형사 및 가사소송이 오는 17일까지 줄줄이 열린다. 소송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오너 일가의 경영권과 직결된 사안이어서 산업계 안팎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전망이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진 지 3년 만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달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 심리로 결심 공판을 마친 뒤 이르면 연내 1심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불법이고, 그 과정에서 4조원 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에 이 회장이 관여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재계에선 1심 결과가 과거 국정농단 사태 이후 6년 넘게 이어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이 회장은 2017년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후 수감 생활과 가석방을 거쳐 2022년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다. 5년간 취업 제한이란 족쇄가 풀리며 지난해 10월 삼성 회장에 올랐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재차 사법 격랑에 휩쓸리게 된다.
수사 기록만 19만 쪽에 이를 정도로 사건이 방대해 2심과 대법원까지 최종 확정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회장 취임 1주년에도 특별한 경영 메시지를 내지 않은 채 미등기 임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의 마지막 수사였던 삼성웰스토리 ‘일감 몰아주기’ 기소 명단에 이 회장이 빠진 만큼 이번 사건이 최종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가사와 민사 사건도 재계의 사법 리스크로 떠올랐다. 오는 9일 서울고법에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이 본격 시작된다. 지난해 12월 선고된 1심 판결은 두 사람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재산분할 액수로 현금 665억원만 인정해 사실상 노 관장의 패소라는 평가였다. 앞서 노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중 42.29%를 분할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노 관장은 항소심 첫 변론준비기일에 직접 법정에 출석해 1심 판결 부당함을 항변하겠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1심 재판부가 ‘특유재산’으로 분류한 최 회장의 SK㈜ 주식에 대한 판단이 2심에서 달라지느냐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 갖고 있거나 혼인 중에도 본인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의미한다. SK㈜ 지분의 특유재산 여부를 2심과 상고심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쟁점이다.
취임 5년째를 맞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LG 지분 11.28%를 놓고 모친 김영식 여사 및 두 여동생과 민사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세 모녀 측은 2018년 구 선대회장 사망 이후 상속 과정에 기망이 있었다며 법정 비율(유류분)에 따라 ㈜LG 지분을 다시 나누자고 주장한다.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구 회장 지분(15.95%)은 9.7%로 줄고 세 모녀의 지분은 14%까지 확대된다. 구 회장은 “선대회장 유지에 따라 적법하게 상속이 이뤄졌다”며 맞서는 상황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오는 16일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을 증인으로 불러 상속 당시 상황을 신문한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