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 삼성 ‘골프 금지령’ 그 후 20년… “시간 없어 못 쳐요”

입력 2023-11-08 04:05

삼성에 ‘골프 금지령’이 공식적으로 내려진 것은 2002년으로 거슬러간다. ‘삼성’의 지위를 이용해 접대 골프를 치지 말라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지침이 시초다. 협력사와 뒷거래를 막기 위한 ‘정도 경영’의 일환이었고 감사팀의 감시 강도가 세지는 계기였다. 처음에 부장 이하 직원을 대상으로 한 골프 금지 규제는 이듬해 임원급으로 확대됐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무엇이 바뀌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삼성에서 골프를 지양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하지만 거래처와 친분이 어느 정도 쌓이면 은밀하게 운동하는 문화 역시 사라지지는 않았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으로 골프를 즐기는 것도 허용한다. 삼성전자 A협력사 관계자는 7일 “예전보다야 덜하지만 삼성 직원들과 종종 골프를 치고 계산은 우리가 한다. 최대한 먼 지방의 구장을 물색한다”고 귀띔했다.

두 번 강산이 바뀌면서 삼성에 골프 금지령이 실존하는지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김영란법과 국정농단 사태, 오너 일가와 경영진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직원 자발적으로 또는 상사가 ‘알아서’ 상명하달하는 식의 골프 자제령은 더 엄격해졌다. 실제 수준급 골퍼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3년 전부터는 채를 아예 잡지 않는다고 한다. 삼성 직원 B씨는 “불과 얼마 전에도 부사장급에서 골프를 치지 말라는 뉘앙스의 언급이 있었다”면서 “아무래도 실적이 좋지 않다 보니 사업부에서도 경비 처리하기가 눈치 보인다. 애초 자리를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전했다.

과거에는 복지 차원에서 삼성전자 사업장 내에 골프연습장을 뒀던 시절도 있었다. “솔직히 시간이 없어 주말 골프는 꿈도 못 꾼다”는 삼성 직원의 말은 안타깝다. 삼성 직원 C씨는 “매 주말이면 수원에서 경영진 소집 회의가 많다. 사실 토요일 출근은 디폴트(기본값)와 같다. 임원이 나가면 고참급 부장도 줄줄이 출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