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번호네’… 여경 관찰력, 김길수 검거 ‘일등공신’

입력 2023-11-08 00:02
특수강도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병원 치료 중 달아난 김길수가 지난 6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검거돼 안양동안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의정부경찰서 형사들이 의정부시 가능동 한 차도에서 도주하는 김길수(빨간 원)를 추격하는 장면. 연합뉴스

병원 화장실에서 도주했다가 63시간 만에 붙잡힌 특수강도범 김길수(36) 검거에는 여성 경찰관의 예리한 관찰력이 결정적이었다. 검거 당시 김씨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도로를 질주하는 등 영화를 방불케 하는 추격전까지 벌어졌다.

7일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검거 직전인 전날 오후 9시10분쯤 여자친구인 A씨에게 공중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시 A씨와 함께 있던 의정부경찰서 강력팀 소속 여경이 걸려온 전화를 포착하면서 김씨의 위치가 발각됐다.

A씨는 김씨의 도주 후 첫 택시비 10여만원을 대납해 경찰 조사를 받던 인물로, 해당 여경은 A씨와 라포(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뤄진 인간관계)를 형성해 왔다. 경기도 의정부시 한 식당에서 조사차 A씨와 대화를 나누던 여경은 테이블에 놓여 있던 A씨의 전화기가 울리자 휴대전화 번호와 다른 일반 번호가 찍히는 것을 발견했다. 김씨의 전화임을 직감한 여경은 곧바로 경찰 상황실에 연락해 번호에 대한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이어 10여분 만에 발신지인 의정부시 가능동의 한 공중전화 부스로 경찰이 출동했고, 김씨 앞을 차로 가로막고 3명의 경찰이 내리는 순간 김씨는 도주했다. 김씨는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달리면서 급하게 방향을 틀고, 도로 위 자동차 사이를 질주했지만 40여m의 추격전 끝에 결국 도주 63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김씨 도주 경로에서 찍힌 CCTV 장면에 가방이 들려 있지 않은 점도 주목했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김씨가 검거되기 6시간 전 “김길수가 찍힌 모습을 보면 가방이 없다. 짧게짧게 옮겨다니는데 결국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올 수밖에 없다. 이제 사흘 됐는데, 곧 잡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경찰은 김씨의 가족과 여자친구 등 주변인 감시를 강화하면서 경기도에 집중된 그의 연고선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혔고, 김씨는 경찰이 연고선으로 좁힌 수사망에 곧장 걸려들었다.

앞서 김씨는 지난 4일 오전 6시20분쯤 숟가락 손잡이 부분 5㎝가량을 삼켜 치료받으러 온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 성심병원에서 화장실 이용을 핑계로 도주했다. 교정 당국 직원들은 1시간이 지난 오전 7시20분쯤 112에 신고했다. 그는 도주 당일 오후 9시40분쯤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마지막으로 포착됐다. 김씨는 도주 당시 동선 노출을 최소화하려고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하철을 탈 때는 승차권을 구입해 개찰구에 넣었지만 내릴 때는 승차권을 다시 넣지 않고 버렸다. 경찰은 실제로 김씨의 하차역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숙박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노숙을 했다. 체포 이후 김씨는 경찰에 “구치소에 있기 싫어 탈주했다”며 “탈주가 길어지면서 힘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김씨를 7일 오전 4시쯤 서울구치소에 넘겼다.

의정부=박재구 기자, 김용현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