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예상보다 일찍 꺾이면서 부품·소재 기업들의 사업이 줄줄이 속도 조절에 들어가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가장 먼저 투자 및 생산 계획을 축소했다. 완성차 업체에 셀을 납품하는 배터리 기업, 배터리 기업에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기업들도 사업 내용을 재검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434만2487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1.0% 증가했다. 전기차 판매가 지난해 61.2% 늘어난 데 비춰 뚜렷한 둔화세를 기록했다.
전기차 수요 변화에 대응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사업 계획을 조정했다. 미국 포드는 계획했던 전기차 투자액을 대폭 줄였다. GM은 일본 혼다와의 ‘저가 전기차’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테슬라는 멕시코 전기차 공장 착공 시점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독일 폭스바겐도 전기차 부문 인력을 줄이고, 기존 전기차 생산 계획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과 적극적인 협력을 이어오던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전기차 겨울’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의 테네시 합작공장 가동 시점을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으로 미뤘다. SK온도 포드와의 켄터키 합작 2공장 가동 시기를 기존 2026년보다 늦추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 목표 하향을 고려해 폴란드 공장 가동률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7일 “2026년으로 예정된 LG의 튀르키예 배터리 공장 가동 시점도 늦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 튀르키예의 코치 등과 2026년부터 포드의 전기차 ‘트랜짓’에 탑재할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었다.
배터리 업계에 제품을 공급하는 소재·부품 업계도 사업 계획을 조정 중이다. 양극재 기업 엘앤에프는 공장 추가 증설에 투자하는 시기를 늦추는 방향으로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류승헌 엘앤에프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지난 6일 “고객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있어 증설과 관련해서는 시점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리막 업체 SKIET도 올해로 예고했던 북미 진출 관련 투자 확정 시점을 내년 초로 미뤘다. 거의 완공 단계에 진입한 2공장의 가동 시점도 기존 올해 말에서 내년 중으로 연기했다.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내실을 다질 기회라는 지적도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지난 1일 ‘배터리 산업의 날 기념식’에서 “원래대로 갔으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공장을 짓는 인력이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오히려 잘 됐다”며 “급히 성장하다 보니 간과한 것들을 다지다 보면 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