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결벽증 환자를 위한 변론문

입력 2023-11-08 04:06

늘 정리하고 피곤한 삶 사는
것을 주변서 꺼려해…뭔가에
집중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데이비드 베컴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살아온 그의 생은 웬만한 영화보다 흥미로웠다. 그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한데 다 보고 나니,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그가 결벽증 환자라는 점이었다. 왜? 나 역시 그러하니까. 그 동질감에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왜? 내 노트북 위로 염분이 함유된 눈물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자판은 특히 청소가 까다로운 녀석이니까.

결벽증 환자로 살아가는 건 힘들다. 주변에서 꺼린다. 늘 정리하는 내가 부담스러운 탓이다. 한데 이는 내게 그다지 중요치 않다. 사실은 나도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세균 덩어리 아닌가. 그러니 내게 필요한 인간은 가족 정도인데, 문제는 가족이 나를 가장 피곤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일례로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사랑하는 아내는, 달리 말해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집에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는 존재다. 이는 달리 말해, 나는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이를 줍는 존재라는 점이고, 이는 또 달리 말해, 아내는 이런 나를 24시간이 모자라도록 피곤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아내를 십분 이해한다. 나도 이런 내가 제일 피곤하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는 결벽증 환자들이 꽤 많다. 베컴은 물론 농구 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 소설가 채만식, KFC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그리고 아사히신문이 지난 1000년간 최고 문인으로 선정한 일본 소설가 모리 오가이까지(이쯤 되면 결벽증 환자인 게 자랑스러울 지경이지만 착각하지 말자. 이런 사람만 골라 썼을 뿐이니).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자. 베컴을 포함해 앞서 언급한 이들 모두를 내가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심스레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 같다. 그 과정은 이렇다. 사실 나도 한때는 수더분한 남자였다. 한데 작가가 된 후부터 조금씩 결벽증을 앓게 됐다. 한 평범한 사람이 글을 쓰려니, 주변의 어수선한 것들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일단 청소부터 했다. 그러자 집중이 잘됐다.

시간이 지나니 약효가 떨어져 더 센 처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청소를 했다. 시간이 더 지나니 약효는 더 떨어져서 베란다 청소를 했고, 다음에는 욕실 청소, 그다음에는 찬장 안의 컵을 하나씩 꺼내 국군의 날 행사에 나선 의장대처럼 각을 잡아 세웠다. 이쯤 되면 당연한 말이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지문이 녹을 만큼 알코올 솜으로 키보드를 닦아냈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이때는 이미 냉장고 안의 음료수 앞면이 일제히 나를 향하도록 진열된 후다. 그래야 글이 잘 써지니까. 가끔은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갔다가 그만 습관이 돼버려 진열된 캔의 줄까지 맞춰주고 돌아온다.

나는 대체 왜 이리도 피곤한 삶을 유지할까. 또 앞서 언급한 결벽증 환자들은 왜 그리 땀 흘리며 청소하고, 그 와중에 흘린 땀 때문에 또 청소할까. 사실은 그들 모두 유한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그 유한성을 넘어 어떤 영역에 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가진 빈곤한 능력을 모두 끌어모아 이뤄야 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일단, 나는 그랬다. 그렇기에 집중을 흩트리는 그 어떤 것도 없애려고 했다. 사실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없앨 수는 없다. 그다음 문제는 소음이지만, 때로 소음은 통제의 영역을 벗어난다. 그렇기에 한 명의 공동체 구성원이 타인에게 갈 피해를 최소화하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청소인 것이다. 이런 연유로 오늘도 글을 쓰기 전에 열심히 쓸고 닦았다.

구차했지만, 이상 결벽증 환자들을 위한 변명이었다. 부디 그들을 이해해 주시길.

최민석(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