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후배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유명 반려견 훈련소장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배심원 무죄 평결을 받았으나,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이를 뒤집고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5부(재판장 이정재)는 지난달 18일 유사강간 혐의로 기소된 반려견 훈련사 진모(49)씨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3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진씨는 지난 2019년 3월 대회 참가를 앞두고 “선배로서 (훈련) 팁을 주겠다”며 후배 훈련사인 A씨를 자신이 머무는 숙박업소 방으로 불러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같은 협회 소속으로 진씨와 안면만 있던 사이였던 A씨는 지난해 11월 진씨를 고소했다. 그는 “작은 업계에서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불이익을 입을까 두려웠다”며 2년 넘게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국민일보 3월 9일자 15면 참조).
진씨의 요청으로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A씨는 7명의 배심원 앞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해야 했다. 배심원은 4대 3으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성폭력 범죄에 대한 무죄 평결 비율은 평균 27.88%다. 일반 강력 범죄 무죄 평결률(살인 3.36%, 강도 8% 등)보다 최대 9배 높은 수치다.
하지만 재판부는 “법원이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유사강간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이를 뒤집었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 도입 이후 성폭력 범죄사건에서 배심원의 무죄 평결이 유죄 판결로 뒤집힌 경우는 416건 중 24건(6.01%)이었다.
진씨는 재판에서 “A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사전에 같은 방에서 투숙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하루 투숙 비용은 5만원에 불과하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이성적 호감이 있는 사이도 아닌 진씨와 혼숙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씨의 성추행 사실을 암시하는 말에 진씨가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했다. A씨는 사건 이튿날 진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한다고 해도 받을 생각 없다. 서로 없었던 사람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씨는 A씨의 요청에 따르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사건 몇 달 뒤 A씨가 “성추행 사실을 다른 곳에 얘기했느냐”고 물었을 때도 진씨는 “이야기한 적 없다”라고만 답했다.
1심 뒤 A씨는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A씨는 “사건이 벌어지고 줄곧 2차 가해에 시달렸다. 재판이 끝난 후에도 ‘결국 꽃뱀이 이겼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며 “훈련소가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진씨가 밤늦게 찾아올까 두렵다”고 전했다. 진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