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앙대 도서관에 마련된 분리수거함 옆 종이상자 사진이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상형과 연애하고 학점은 올(All) F’ vs ‘이상형에게 차이고 학점은 올 A+’ 라고 적어놓고 투표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감싸는 종이 홀더로만 할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그 옆에는 ‘감자튀김을 초장에 찍어 먹기’ vs ‘회를 케첩에 담가 먹기’라는 문구가 쓰인 상자가 설치됐고 투표는 플라스틱 빨대로 하도록 했다. 각각의 상자에 수십 개의 컵홀더와 빨대가 쌓였고, 분리수거함에는 플라스틱 컵만 깔끔하게 버려졌다.
사람들이 즐겨하는 밸런스 게임으로 완벽한 분리배출을 유도한 사람은 중앙대 화학신소재공학부 4학년생 서사라(23)씨다. 그의 아이디어는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궜고 다른 대학과 인근 고등학교로부터 ‘우리도 설치할 수 있겠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서씨는 6일 “(뜨거운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 날 친구들이 뉴스 화면을 캡처해 보내준 것을 보고 반응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서씨가 환경보호를 위해 학내에서 아이디어를 실험한 게 처음은 아니다. 3년 전엔 세제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재활용이 어려운 점에 주목, 용기를 가져온 학우들에게 세제를 나눠주기도 했다. 세제 리필에 성공한 서씨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기 위해 학교를 잠시 떠났고 자신의 이름을 따 ‘사라나지구’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다. 상주 직원에 따른 인건비와 영업 공간 확보에 드는 임대료 등으로 성공하진 못했다.
대신 서씨는 휴대전화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필요한 만큼 세제를 리필할 수 있도록 무인 자판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발업체의 문을 두드렸고 기계 공정에 대해서도 틈틈이 공부했다. 시행착오 끝에 환경보호 행사장에서 선보인 지구자판기는 ESG경영에 뛰어들기 시작한 기업과 공공기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우리 회사와 기관에도 설치해달라”는 러브콜이 밀려들었고 서씨는 30여곳의 공공기관과 기업에 지구자판기를 대여해줬다.
환경을 사랑하는 평범한 공대생이던 서씨는 최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등 ‘에코인프라’ 사업가로 인정받았다. 다음 달 본격적으로 렌탈 사업을 하기 위한 지구자판기 최종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이용자 데이터 분석을 접목한 수익 모델도 구상 중이다. 서씨는 “이번 밸런스 게임 분리배출함을 계기로 환경보호에 나서라고 압박하는 것보단, 친근하고 재밌게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의 사업에서도 활용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