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린아이들을 믿지 않는 자로 죽게 할 순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간 전쟁이 치열한 가운데 가자지구 북부의 한 교회 성도들은 이같이 뜻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예배당에서는 9명의 어린이가 참여한 가운데 눈물의 세례식이 거행됐다. 갈 곳 없는 150여명의 피란 성도들이 이 현장을 지켰다.
‘필사의 유아세례식’을 급히 마련한 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교회는 세례식 아흐레 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건물 일부가 파괴됐고 교회에 피신해 있던 피란민 가운데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사망자 19명 가운데 어린이만 3명이었다.
폭격 직후 교회 공동체는 이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폭격이 또 이어질 경우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결코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자. 목숨을 잃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하자.’ 교회 구성원들은 비장한 마음으로 이렇게 뜻을 모았다. 세례식은 웃음이 가득했던 평소와는 달리 시종 침통한 가운데 진행됐다고 이 교회 홍보 책임자 카멜 아야드씨는 최근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전해 왔다.
6일 WCC 등에 따르면 세례식이 거행된 이 곳은 성포르피리오스 교회로 가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AD 425년 가자 일대의 주교였던 성포르피리오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후 십자군에 의해 12세기 초 재건됐고 1856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정교회 예루살렘총대주교청 관할이다. 가자에는 이 교회 외에도 가자침례교회와 미국성공회가 세운 성빌립교회 등이 있고 1000여명의 크리스천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유아 세례식 현장을 지킨 아야드씨는 “평소 부모들은 자녀의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세례식에 참여하지만 이번 경우엔 ‘죽기 전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다급함이 컸다”면서 “기쁨이 넘쳐야 할 세례식을 고통 속에 준비했고 침통한 분위기 가운데 진행됐지만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야드씨는 세계교회에 기도를 요청했다. 그는 “우리 교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쉬지 않고 폭탄이 떨어지는데) 대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종훈 서울 마포구 성니콜라스대성당 주임사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자지구 일대가 정교회 전통이 강해 한국정교회와도 유대감이 크다”면서 “매일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임 사제는 “한국의 기독교인 모두가 평화의 기도를 하자”고 권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9500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 가운데 어린이만 40%(3900명)를 웃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으로 사망 1430명, 부상 5600명 등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