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하나님의 도구로… 기독교·세상의 경계에서 희망 노래

입력 2023-11-07 03:05 수정 2023-11-07 10:39
가수 헤리티지가 지난달 31일 서울 노원구 재현고등학교에서 열린 채플예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지난달 31일 서울 노원구 재현고등학교 채플 시간.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무대 위에서 노래를 시작한 CCM 그룹 헤리티지에게 향했다. 헤리티지 팀원들은 40분간 열창하며 관객과 소통했다. 기독교와 세상의 경계에서 묵묵히 희망의 노래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헤리티지를 재현고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이들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헤리티지는 한국에 ‘블랙 가스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소개한 주인공이다. ‘흑인 영가’로 불리는 블랙 가스펠은 재즈 느낌이 강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믿음의 유산’이라는 찬양팀으로 시작한 뒤 ‘헤리티지 매스콰이어’로 그룹 이름을 바꿨다. 활동 반경을 확장하기 위해 2006년 ‘헤리티지’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이를 계기로 사역을 전문화했다. 보컬 그룹은 헤리티지로, 헤리티지 매스콰이어로 자리 잡았고 헤리티지 밴드도 활동하고 있다. 헤리티지는 ‘불후의 명곡’ ‘나는가수다’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폭발적 가창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겉보기에 화려한 헤리티지에게도 힘든 순간은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팀 해체를 고민할 만큼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음악적 고민과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팀원들이 모든 걸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기적처럼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교회가 있었다. 2017년 서울 광염교회 조현삼 담임목사가 헤리티지의 사연을 듣고 전폭적인 후원을 시작한 것이었다.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는 헤리티지 팀원들.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렇게 맺은 인연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헤리티지 리더 김효식(44) 전도사는 “아직도 꿈만 같고 아낌없는 후원에 감사할 뿐”이라며 “조 목사님이 팀원들의 전·월세 유무에서부터 한 달 수입과 채무 현황까지 꼼꼼하게 물어보셨는데 사역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 전도사는 이런 도움 덕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에서 신학도 공부하며 광염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헤리티지가 사무실과 녹음 스튜디오로 활용하는 공간도 모두 교회가 제공했다.

헤리티지 팀원인 박희영(41) 간사는 “우리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헤리티지가 수입이 많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여유로웠던 적은 없었고 노래가 좋고 하나님의 도구로 부르심 받았다는 사명만 바라보고 달려왔다”고 털어놨다.

새로운 문화에 보수적인 한국교회 특성상 블랙 가스펠이라는 장르는 낯선 게 사실이다. 박 간사는 “사실 교회 안에서 전통적으로 연주하고 부르던 음악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덜 한 게 그동안의 현실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찬송가를 우리 스타일로 편곡했더니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다. 그만큼 교회 분위기도 변했고 우리 팀도 성장을 위해 과도기를 거쳤다”고 했다. 이어 “교회 안에서 다양한 음악이 받아들여 지기를 기대한다. 헤리티지도 교회 음악과 세상 음악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서 헤리티지의 장점으로 꼽혔던 대중음악과 기독교 음악 사이를 넘나들며 복음을 전했던 자부심이 느껴졌다.

희망의 아이콘으로 다시 서다

사실 헤리티지가 추구하는 음악이 ‘예배 음악’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음악을 하겠다는 건 헤리티지 존재 이유와 더욱 맞지 않는다.

이신희(42) 간사는 “대중에게 찬양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복음을 전하는 게 우리 정체성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며 “그렇다 보니 국내에는 헤리티지의 롤모델이 없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 사역은 창조적이며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팀원들은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기독교 문화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교회가 기독교라는 틀 안에 갇혀 있기보다는 세상으로 나아가 대중과 기독교 문화를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을 통해 복음을 전할 기회가 더 많이 열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세대 찬양 사역자 양성을 위한 비전도 제시했다.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에서다. 바로 문화다. 김 대표의 말이다. “한국기독음악협회(KCCM)의 인증을 받은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찬양 사역자를 꿈꾸는 이들을 바르게 세우는 게 저희가 함께 꾸는 꿈입니다.”

헤리티지는 향후 교회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다양한 사역을 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도 지역사회 교회에 합창팀을 만들어서 전도하는 사역을 펼치고 싶습니다. 교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합창단 클래스나 공연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