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성경 본문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심하게 맞아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채 쓰러져 있는 상황으로 시작합니다. 때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길에 쓰러져 신음하던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그대로 지나칩니다. 이어서 한 레위인이 그곳을 지나가게 됐는데 그 역시 길에 쓰러져 신음하던 강도 만난 사람을 못 본 체하고 그대로 지나쳤습니다.(30~32절)
제사장과 레위인이 누구입니까.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강도를 만나 신음하며 죽어가는 상처 받은 이웃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지나쳤습니다. 이 제사장과 레위인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웃의 아픔을 못 본 체하고, 이웃의 고통 받는 소리를 못 들은 체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친 후 그 길을 지나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그 이웃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그 상처를 치료해 주고, 싸매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줬던 사마리아인의 선행을 말씀하신 후에 율법 교사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36~37절)
성경의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장애인, 병자,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사회로부터 손가락질받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상한 마음과 육신의 질고를 치료해 주시고 환경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마리아 사람처럼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를 싸매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줘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사랑의 실천이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다시금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통받는 이웃, 절망 가운데 있는 이웃, 소외된 이웃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싸매주고 돌봐줘야 합니다.
부활절에 한 번, 성탄절에 한 번,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한 번, 이런 식으로 보여주기식 사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평소에 소외된 이웃들 가까이에서 지속적으로 이웃들에게 관심을 두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라’고 외치기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두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사랑으로 섬겨나가는 우리가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김종호 목사(강화 예은순복음교회)
◇강화 예은순복음교회는 ‘치유와 회복, 섬김과 나눔’이라는 표어 아래 사회적 약자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진 교회입니다. 교회는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으며, 담임인 김종호 목사는 사회복지법인 예닮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거주와 직업 자활을 돕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