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원재료 자립+원가 경쟁력… K-동박 ‘中과 한판 승부’

입력 2023-11-06 04:06
지난 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산업단지(KKIP)에 위치한 SK넥실리스 동박공장에서 현지 직원이 생산된 동박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SKC 제공

지난 1일(현지시간) 찾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관광객들이 많은 도심을 벗어나 버스로 20여분 달리자 드넓은 산업단지(KKIP) 한복판에 SK넥실리스의 말레이시아 동박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장 23개(16만2700㎡) 넓이의 이 공장은 지난달 23일 고객사에 첫 제품을 인도하며 본격적인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 SK넥실리스는 SKC의 이차전지용 동박 사업 투자사다.

푸른색 방진복을 입고 공장 내부로 들어섰다. 어른 키보다 훌쩍 큰 지름 3m 드럼(제박기) 60여대가 쉴 새 없이 돌며 구릿빛 동박을 뽑아내고 있었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만든 막으로, 이차전지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을 완성하는 핵심 재료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 4개국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동박 제조 공정은 먼저 폐전선에서 추출한 구리로 도금액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어 도금액을 물레방아처럼 회전하는 제박기 아래에 살짝 적신 뒤, 전기 작용을 통해 제박기 표면에 구리가 얇은 막을 형성하도록 한다. 구리막을 얼마나 얇게 만드냐가 기술의 핵심이다.

동박이 얇을수록 배터리에서 차지하는 무게와 부피가 준다. 같은 배터리 공간에 더 많은 양·음극재를 넣을 수 있어 주행거리 등 성능이 향상된다. 신동환 SK넥실리스 말레이시아법인장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얇은 4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 단위)까지 생산할 수 있다”며 “3.5마이크로미터 생산까지 도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동박 시장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SK넥실리스를 비롯해 전 세계 60여개 업체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기술력은 일본을 넘어섰지만, 원가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의 저가 전략이 거센 상황이다.

SK넥실리스가 첫 해외 기지로 말레이시아를 낙점한 이유도 원가 경쟁력에서 중국과 정면승부를 벌이기 위해서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직원 325명 중 90%가 현지인으로, 한국 대비 인건비가 3분의 1에 불과하다. 생산 원가의 40%에 달하는 전력비 역시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해 국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였다.

동박 시장은 중국의 ‘공급망 봉쇄’ 전략에도 자유롭다. 폐전선 등 원재료를 모두 한국과 말레이시아 호주 등에서 들여온다. 김자선 SK넥실리스 동박생산실장은 “중국산 원재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SK넥실리스는 말레이시아에 이어 내년 폴란드에 연산 5만7000t 규모의 동박 공장을 본격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말레이시아=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