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는 노랫말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그렇게 발현된 공감이 일상을 풍성하게 하기도, 때로는 고된 순간을 지탱해나가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음악이 지닌 마법 같은 힘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마법처럼 마음을 움직이진 못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음원이 출시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시장에서 ‘힐링’ ‘위로’ ‘응원’송으로 각인된 커피소년(본명 노아람·42)의 플레이리스트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내가 니편이 되어 줄게.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 행복해져라. 오늘도 굿나잇. 토닥토닥 편히 쉬어요.’ 누군가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 전하는 손편지 일부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커피소년의 노래 4곡의 가사를 하나씩 얹은 문장이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녹이며 위로를 주는 노랫말의 바탕엔 무엇이 깔려 있을까. 최근 경기도 고양 일산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에게선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MBTI 상으로는 ‘F(feeling·감정형)’가 아닌 ‘T(thinking·사고형)’ 타입이에요. 다른 이를 향한 공감보다는 저 스스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사에 담은 건데 많은 분이 공감해주셔서 놀랐죠(웃음).”
시간을 되돌려보면 그가 대중 가수로 살아가게 된 것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상은 짝사랑하던 이성 친구였고 이야기는 사랑 고백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던 그녀에게 고백하려고 커피소년이란 이름을 짓고 ‘사랑이 찾아오면’을 발매한 것이 대중 가수로서의 시작이었다.
데뷔 이후 그에겐 ‘힐링 BGM 맛집’ ‘행복 전도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함께해왔다. 귀와 가슴에 단번에 각인되는 생활 밀착형 가사들은 듣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강력한 무기였다. 무심코 노래를 듣다가 귀에 꽂히는 ‘통장 잔고 없는데 장가갈 수 있을까’ ‘왜 물어. 남자친구한테 나 뚱뚱하냐고 물어, 솔직히 말하면 때릴 거면서’ 같은 가사를 마주하면 자연스레 ‘이 노래 부른 가수 누구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격하게 공감될 만한 음악을 써 내려가는 커피소년만의 루틴은 무엇일까. 이번 물음에도 그는 “곡을 쓰려고 건반에 앉거나 기타를 잡지 않는다”는 선문답 같은 답을 내놨다.
“걷거나 청소기를 돌리거나 머리를 감는 일상적인 무언가를 할 때 하얀 도화지에 그림이 그려지듯 모티브가 떠오르는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악상을 보내주신다는 느낌을 받아요. 대표곡 ‘내가 니편이 되어 줄게’도 그중 하나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도중에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휴대폰으로 조심스레 속삭이듯 녹음했던 기억이 납니다.”
커피소년 음악의 뿌리가 돼준 건 다름 아닌 아버지 노문환 목사다. 우리나라 1세대 찬양사역자로 알려진 노 목사의 무대를 바라보며 유년 시절을 보낸 그에게 음악을 통한 ‘복음 메신저’로의 삶은 자연스러운 멜로디 라인 같았다. 그의 본명 ‘노아람’이 아브라함의 준말인 것도, 데뷔 전 교회에서 CCM 작곡하는 게 취미였던 것도, 데뷔 전 ‘아람’이란 이름으로 CCM 음악 활동을 한 것도 그 흐름의 연장선이었다.
그는 “대중가요로 발매했던 곡들 모두 CCM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데뷔 후 13년여 만인 지난달 공식적으로 첫 번째 워십 앨범을 발표한 커피소년이지만 줄곧 CCM 가수 활동을 해온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목만으로도 기독교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믿음’이란 곡을 비롯해 2014년 발매된 곡 ‘다리미’에는 구겨진 우리의 마음을 다려 주시는 하나님을 묘사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작업실에서 아버지, 아내 정혜선(제이래빗), 찬양 사역자들, 소속사(로스팅 뮤직) 직원들과 함께하는 찬양 예배는 그의 일상에 영적 동력을 주는 시간이다. 워십 앨범에 담긴 ‘당신 예배할 때’도 예배 공동체 일원이자 아버지의 제자들인 ‘시나이 워십(SINAI Worship)’과 함께 작업하며 정갈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포기 위기 절망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많은 시대이기에 커피소년의 음악은 위로자로서 듣는 이들의 상한 마음을 매만진다. 그들을 향한 응원 요청에 커피소년은 자신이 애정하는 곡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독 나만 멈춰있고 초라해지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일본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 예쁜 카페들을 구경했는데 마지막 날 숙소 앞에 있던 익숙한 스타벅스에서 악상이 떠올랐습니다. ‘더 잘하려거나 조급해 마요. 있는 그대로 그냥 두세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워요’라는 가사를 담은 곡 ‘그냥 거기에 있어요’는 그렇게 쓰여졌어요. 그때 다짐했죠. 베드로후서(1장 10절) 말씀처럼 내 부르심대로 내 색깔대로 앞으로도 여전히 살아가자고. 초라해 보이고 뒤처져 보여도, 대중이 원하는 음악의 형태가 아니어도, 한 사람이 내 음악에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느낀다면 그걸로 나는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마음을 주셨어요. 커피소년의 음악이 그런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