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의 버크셔 커뮤니티 칼리지 체육관에 첼로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접종으로 어수선한 실내가 일순간 조용해지고 모두가 연주에 집중했습니다. 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였습니다. 연주자는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러 온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Yo-Yo Ma)였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선물 같은 위로의 순간을 선사한 요요마에게 환호했습니다. 이 장면을 담은 영상이 SNS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따뜻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세계에 음악으로 평화를 전하다’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에 이어 21세기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연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요요마는 프랑스 파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인 대만계 중국인 아버지와 성악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요요마는 4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비올라와 첼로를 배웠고, 5살에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외워 연주하며 6살에 데뷔, 리사이틀을 하게 됩니다. 7살에 줄리어드음악원에 입학한 요요마는 본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만나게 되죠. 요요마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반한 파블로 카잘스는 그를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에게 소개하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진행하는 음악 TV 프로그램 ‘예술의 향연(The American Pageant of the Arts)’에 출연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 앞에 선 요요마는 누나인 유쳉마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7살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침착한 모습으로 완벽하게 곡을 연주했습니다. 이 연주 장면이 방송되면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후 바이올린의 전설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Isaac Stern)과 카네기 홀에서 함께 연주하고 120개가 넘는 앨범을 녹음했으며, 19개의 그래미상을 받았습니다. 23살에는 미국 클래식의 최정상급 연주자에게 수여하는 에이브리 피셔 상(Avery Fisher Prize)을 수상하고 2022년에는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비르기트 닐손 상도 받았습니다.
요요마는 어린 나이에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 협연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지휘자, 연주자와도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함께하며 성공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요요마는 지난 2017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에서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뭔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면 선택이란 걸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어요. 그냥 한 거죠. 떠밀린 거예요.” 연주로 정신없던 젊은 요요마에게 작곡가 레온 커슈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넌 경이로운 음악가지만 너의 소리를 찾지 못했다”.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요요마가 해결책으로 택한 것은 ‘인류학’이었습니다. 요요마 인생의 롤모델 파블로 카잘스의 조언인 “나는 첫째로 사람이고, 둘째로 음악가이며, 셋째로 첼리스트이다”라는 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던 그는 음악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요요마는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음악의 존재와 의미, 가치와 더불어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인 전쟁, 난민, 인권 같은 사회 현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요요마는 한 명의 첼리스트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자신의 역할, 그리고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 고민의 결과물이 세계 분쟁·주요 지역에서 바흐의 곡을 연주하며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바흐 프로젝트’입니다. 요요마는 “두려움은 우리를 작고 위축되게 하지만 문화는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요요마는 2018년 8월부터 2년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바흐 프로젝트’를 6개 대륙, 36개 도시를 순회하며 진행했습니다. ‘첼로의 구약성서’라고 불리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6곡 36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연주 시간만 2시간 30분에 이릅니다. 무반주 곡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는 요요마와 첼로뿐입니다. 연주는 150분간 휴식 시간이 없이 이어집니다. 요요마는 오직 첼로만 들고서 종교적 유혈 분쟁이 빈발하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기독교 지역과 이슬람 지역의 한 가운데인 그린라인에서 연주하거나, 미국의 잘못된 난민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지대인 텍사스 라레도에서 연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갑니다. 2019년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 열린 ‘평화음악회’에서는 바흐의 곡을 연주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남과 북이 같은 달을 보듯, 같은 바흐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첼리스트는 이제 6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노년에도 그는 여전히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탁월하고 호소력 있는 음악으로 평화와 화합,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며 울림을 주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잠잠해질 것 같은 세계에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넘쳐나는 희생자 숫자는 세상을 회색으로 칠하고 있습니다. 아무 죄없이 희생되는 사람들은 주님이 자기 몸 내어주시며 구원하려는 사랑하는 자녀들이기에 평화에 대한 마음이 더 간절해집니다.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변할 수 있다는 뚜렷한 믿음을 전하는 요요마의 삶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많습니다.
조재현 PD choj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