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남부 일대에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의혹으로 경찰 수사선상에 오른 임대인이 동업자들과 빌라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세입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마련된 특별법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먼저 경매에서 낙찰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됐지만, 이 사건처럼 공유지분 문제가 개입되면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관악·구로·금천·동작구 일대에 오피스텔과 빌라를 보유하고 있는 임대인 김모(56)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김씨와 계약한 세입자는 150여 가구다. 이들은 김씨가 강남 고급 아파트에 살고, 김씨 남편이 대학병원 교수여서 보증금 미반환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국민일보 5월 31일자 12면 참조).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달 중순 김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예정이다.
김씨 사례는 지분공유 빌라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기존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건과 차이가 있다. 김씨가 관악·동작구 일대에 보유한 빌라는 10여채인데, 대부분 다른 이들과 빌라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빌라 건축비가 많이 들자 지인들과 대출금을 분담하고 지분을 나눠 가지는 방식으로 동업한 것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경매로 빌라가 팔리면 돈을 받기 위해 이미 임차권등기명령을 접수한 상태다. 현행법상 지분공유자 중 1명이 임대차계약을 맺었더라도 다른 지분공유자가 동의했다면, 세입자는 건물 전체 지분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지분공유자의 동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임대차계약을 일임하겠다는 내용의 위임장이 작성된 게 아니라면 피해 복구가 복잡해진다.
법무법인 심목의 김예림 대표변호사는 “구두로만 위임했다면 다른 지분공유자 동의 없이 계약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보증금 미반환 사건 중에서도 이례적인데, 세입자는 직접 계약을 맺은 임대인 지분에 대해서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이 사건 피해자들은 지난 6월 마련된 전세사기특별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경매로 다른 이에게 주택 소유권이 넘어가더라도 세입자가 낙찰 금액을 내면 먼저 주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동업자들이 자신은 임대차계약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세입자들은 김씨 지분에 대해서만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 김씨와 동업자들은 위임장을 작성하지 않고 임대차계약을 맺은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일부 동업자들은 자신 몫을 요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기존 사건과는 달라 특별법에 의해 보호되지 못하는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