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뿐 아니라 금쪽이 보호자의 마음도 보듬어야죠”

입력 2023-11-04 03:08
히얼, 나우 성장연구소 하현 대표가 최근 경기도 성남시의 센터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책장에 잠언 16장 3절 구절이 적힌 편액이 보인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발달지연 아동뿐 아니라 이들 보호자의 회복과 성장에 집중하는 아동발달센터가 있다. 아동발달 전문가로 13년간 활동한 하현(36) 대표가 이끄는 ‘히얼, 나우 성장연구소’다. 재작년 6월 문을 연 연구소 이름엔 ‘모든 순간이 소중하며 그 소중한 순간은 지금, 여기(Here, Now)에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금쪽이’뿐 아니라 ‘금쪽이 보호자’의 마음도 살필 것을 강조하는 그를 최근(지난 12일) 경기도 성남시의 센터에서 만났다. 노란색과 초록색 등 밝은 색깔로 꾸며진 센터 벽면 곳곳에는 ‘어서 와요 소중한 당신’ ‘오늘 하루도 마음껏 행복하세요’ 등의 문구가 붙어있었다.

보호자도 힐링이 필요해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직업치료사와 특수·보육교사 등의 자격증을 갖춘 특수교사로 지내던 하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데는 발달지연 아동 보호자의 영향이 컸다. 아동들은 그의 수업을 들으며 점차 나아졌지만 이들의 보호자는 대부분 계속 지치고 힘든 모습을 보였다.

“시중에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교육이 참 다양한데 정작 보호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더라고요. 아동의 동반자인 보호자의 성장과 힐링을 위한 공간이 꼭 필요하다 여겨 이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소를 열었습니다. 아이와 보호자가 모두 성장해야 온전한 변화가 가능하거든요.”

발달지연 아동의 교육에 있어 보호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전문 교사에게 자기조절법 등을 배우더라도 일상에서 이를 보호자와 연습하지 않으면 배운 게 허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호자 협조 없는 아동의 성장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보호자가 아동의 교육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데 있다. 하 대표는 “여타 친구와 발달 양상이 조금 다른 우리 아동의 보호자들은 이중고를 넘어 삼중고, 사중고에 시달린다”며 “아동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 가족과의 충돌과 주위 시선, 수업료 마련 등으로 아이 돌볼 체력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고 했다. 이어 “자녀를 위해 무조건 참고 살다가 아동 상담 중 울음을 터트리는 보호자도 있다”며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다. 이 경우 솔직한 감정 표현을 격려하며 응원하곤 한다”고 말했다.

발달지연 아동 보호자만을 위한 센터 설립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아동발달센터를 세운 건 무엇보다 아동 필요를 우선하는 대다수 보호자의 성향을 고려해서다. 발달지연 아동이 교육을 받으면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하지만 보호자 홀로 교육을 받으러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면을 고려해 하 대표는 센터에서 아동과 보호자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종종 마련한다. 이중 가장 호응이 좋은 건 ‘수업료 할인 이벤트’다. 하 대표는 “‘가족과 사진찍기’ ‘아이 장점 적어오기’ 등의 이벤트를 열고 응모자에겐 수업료 할인 등의 혜택을 준다. 언어나 놀이, 미술 등 동시에 여러 교육을 받아 수업비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를 반기는 보호자가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건강한 성장이란…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하현 대표가 센터를 찾은 아동에게 운동발달 교육을 지도하는 모습. 하현 대표 제공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선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하 대표는 “자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고 조언했다. 아동 성장에 있어 ‘자존감’ 유무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있는 상태를 바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존감은 높고 낮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험 점수처럼 수치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수치의 높고 낮음이 아닌 방향이다. 남들보다 늦고 부족하더라도 성장하는 방향으로 아동이 나아갈 수 있도록 보호자가 동행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센터 교육을 종결한 아동 A(5)군은 보호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꾸준히 연습해 개선된 사례다. 몇 년간 A군의 어린이집 등원 거부로 어려움을 겪던 보호자는 센터를 찾아와 하 대표의 지도를 받았다. 센터에서 익힌 문제해결법을 집에서 부단히 연습한 A군은 이후 어린이집 생활뿐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도 나아졌다. 그는 “‘좋은 보호자’는 아동 발달을 위해 교사의 말을 신뢰하고 함께 노력하는 보호자”라며 “절대적 믿음까진 아니더라도 교사가 아동에게 도움을 준다는 기본적 신뢰가 필요하다. 이 신뢰가 없다면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아동 발달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남다른 아이들, 경계 없이 즐길 공간을 꿈꾸며
센터 벽에 걸려 있는 아동 수강생들의 작품들. 신석현 포토그래퍼

초등학생 때부터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에 출석한 하 대표는 대학교 입학 후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했던 국내외 선교와 주일학교 교사 경험은 현 센터 운영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교회에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과 협업하고 소통한 경험이 제겐 큰 자산이다. 센터에서도 아동과 보호자를 두루 만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꾸준한 신앙생활 덕에 수익보다 센터를 찾은 아동과 보호자의 삶에 더 관심을 두는 가치관도 세울 수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하 대표는 발달지연 아동과 일반 아동이 함께 어울리며 배우는 공간을 구상 중이다. 그는 “발달지연 아동 보호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란 이분법적 시각으로 자녀를 평가하는 세간의 시선”이라며 “단지 조금 남다르게 태어나고 성장하는 친구일 뿐 뭔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자연스레 알리는 공간을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남=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