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동원 (30) 은퇴 후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픈 고통의 시간 찾아와

입력 2023-11-02 03:04
1990년대 초반 촬영한 이동원 목사의 가족사진. 큰아들 이황 목사와 2020년 세상을 떠난 작은아들 고(故)이범 집사, 이 목사, 우명자 사모(위로부터 시계 방향).

국민일보 칼럼 제목이 ‘역경의 열매’다.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가슴 아픈 고통의 시간은 은퇴 후 찾아왔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대할 수도 없었던 먹구름과 같은 시간이 밀려왔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냥 “왜”라는 대답 없는 물음을 허공에 던질 뿐이다. 하나님의 침묵이 야속하기만 할 뿐이다. 이것은 두 아들에게 찾아온 불가사의한 고난이었다. 그동안 성경 인물 욥이 경험한 것처럼 ‘욥의 친구들’ 같은 이들이 나를 찾아와 “이것은 아비의 죄 때문”이라며 정죄하고 참소하기도 했다. 물론 나름대로 금식기도하며 회개했고 30권이 넘는 신정론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답을 찾아보기도 했다.

어느 날 큰아들에게 정신적 질병이 찾아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맏아들은 미국의 릭 워렌 목사가 저술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읽다 자신의 소명을 느꼈다. 그래서 직업을 정리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집은 미국 남가주로 옮겼으며 인근 교회에서 영어 사역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믿음이 없던 큰 며느리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집을 가출하는 일이 생겼다. 큰아들은 미국 신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 시골에서 박사 논문을 쓰며 자신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적 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며느리의 가출 충격이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한국의 여러 의사를 만났지만 진단은 모두 달랐다.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완전한 쾌유는 어렵다고 진단받았다. 그런 가운데 홀로 삶을 개척한 아들은 나의 한국어 설교집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쳐 7권이 출간됐다. 문자 그대로 역경의 열매들이다. 이 책들로 인해 내가 미국 교계에 소개돼 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병난 아들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이를 두고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차남에게는 대장암이 찾아왔다. 지금부터 3년 전 일이다. 미국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한동대 법률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제 변호사가 됐다. 한국에서는 법무법인 ‘율촌’, 미국에서는 ‘EA스포츠 법률회사’ ‘AT&T’ 등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갑자기 암이 발병된 것이다. 건강하고 스포츠를 좋아한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만 42세라는 인생의 절정에서 암과 투병하게 된 둘째 아들. 2020년 10월 암 진단 후 수술하고 치료를 받은 지 꼭 7개월 만에 세상을 그렇게 떠났다. 나와 아내가 미국 LA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들 가족이 출석하던 미국 토렌스조은교회에서 장례식이 거행됐다. 김우준 담임목사님은 물론 인근에 계신 고창현 이종용 목사님의 도움이 컸다.

아들을 화장하고 ‘천국 환송 예배’를 기다리던 내게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을 주셨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소화하기 벅찬 말씀이었지만 믿음으로 말씀을 받으니 비로소 열 가지 감사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서 당시 국민일보(2020년 10월 19일 30면)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된 ‘가슴 아픈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