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장난을 친 학생에게 ‘레드카드’를 준 담임교사 행위를 ‘정서적 학대’로 보고 기소유예한 검찰 처분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앞서 대법원은 같은 사건에서 교원의 교육 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고 판결했는데, 헌재도 교사의 정상적인 훈육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주지검이 교사 A씨에게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최근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취소했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참작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죄가 인정된다는 검찰 판단을 받은 A씨는 지난해 8월 “행복추구권을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A씨는 2021년 전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았고 교실에서 ‘레드카드제’를 운영했다. 그해 4월 B군이 수업 중 물병으로 장난치며 소란스럽게 하자 A씨는 B군 이름표를 칠판 레드카드 난에 붙였다. 레드카드 옆에 이름이 붙으면 방과 후 교실 정리를 하는 게 A씨와 학생들 사이의 약속이었다.
B군 모친은 이튿날부터 아이를 등교시키지 않고 학교 측에 거듭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A씨는 스트레스로 병가를 내고 담임을 그만뒀다. 학교 측은 교권침해 행위를 멈춰 달라고 통지했는데, B군 모친은 불복 소송을 냈다. 또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기관에 신고했다. 검찰은 A씨가 정서적 학대를 했다며 지난해 4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해당 사건은 최근 학부모의 교권침해 사건들이 연이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재조명됐다. 대법원은 지난달 “정당한 교육 활동에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B군 모친의 반복적인 담임 교체 요구는 교권 침해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이어 헌재도 기소유예 처분은 부당했다며 교사 측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레드카드제를 정서적 학대로 볼 수 있느냐는 쟁점에 대해 “A씨는 학생 일반에 대한 교육적 목적으로 이뤄진 정상적 훈육의 일환으로 레드카드를 줬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B군은 레드카드 사건 6개월 후인 2021년 10월 야경증(잠에서 깨 비명을 지르는 질환)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헌재는 “B군이 호소한 정신건강 문제가 레드카드 때문이었는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검찰은 명확한 인과관계를 수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중대한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는 자의적 검찰권 행사”라고 지적했다.
검찰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서 객관적 증거를 충분히 따진 후 처분을 내리고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학급 규칙을 어긴 학생에게 ‘벌 청소’를 시켰다가 정서적 아동학대로 고소당한 초등학교 교사 사건에서 “정당한 학생 지도의 일환”이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 관계자는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할 때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신중을 기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