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된 일은 나무를 깎는 것이기에 일주일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 그러니 한 주간 차림새도 비슷하다. 작업복은 톱밥이 군데군데 붙어 있고 목공용 본드와 마감재로 얼룩져 있다. 네 번의 겨울을 나도록 즐겨 입었던 경량 패딩은 전투사의 갑옷처럼 상처투성이다. 조각도 날에 찢어졌는데 작은 움직임에도 깃털이 송송 빠져나온다. 공기 속을 유영하다가 느긋하게 바닥에 착지하는 깃털을 관찰하는 재미는 청소의 수고로움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서 투명 테이프 여러 장을 길게 끊어다 붙였다. 작업의 몰입도와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볼품없어지는 작업복이 마음에 든다. 작업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서다.
일주일에 한 번 대학으로 강의를 하러 가는 날에는 오피스룩을 입는다. 전날 구김 없이 잘 다려놓은 팬츠와 자켓을 입고 단정한 구두를 신는다. 평소 하지 않는 화장을 하고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맸던 머리도 곱게 손질한다. 특정 집단에 속한 개인으로서 상식 범주 내에 존재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흥미로운 건 성큼성큼 걸었던 걸음걸이가 흐트러짐 없이 도도해지고 공구를 다루는 데 익숙한 거친 손길이 펜을 잡고 차분해진다는 점이다. 작업실에서 야생마처럼 뛰놀던 나는 강의하는 내내 요조숙녀처럼 점잖은 척을 한다.
환복은 만화영화 주인공의 변신 장면이나 무대 배우의 분장과 유사하다. 나는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는 데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좇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정신성의 만족에 있다고 한다. 옷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옷이 날개다’ ‘옷은 나이로 입는다’와 같은 속담만 봐도 알 수 있다. 옷은 사회적 지위, 직업, 취향 등을 나타내는 중요한 신호이자 자기표현의 방법이다. 이미 오래전 신체 보호의 기능적 수단을 넘어선 옷은 우리의 정신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산물로서 캐릭터를 상징하는 최적의 도구가 됐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