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에 대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런 성경 속의 이적과 기사가 동일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런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다니엘 시대 때 다니엘의 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시어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도록 완벽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초대교회 수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예수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불 속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다 순교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이 다니엘의 세친구들과 같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또한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어명을 거역하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하다가 사자 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고, 다니엘은 이튿날 새벽에 다리오 왕에 의해 사자 굴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에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증인 된 삶을 살다가 사자 우리 안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다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사자들의 밥이 됐을까요. 그들에게는 이 다니엘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적과 기사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일어나는 기적은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지나는 사십 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하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럼 왜 그쳤을까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백성들보다 믿음이 더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제 더 만나를 내리실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가 아니라 땅에서 나는 만나를 먹고 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는 매일 똑같은 만나였습니다. 그래서 광야 백성들이 이 만나를 두고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 맛 같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기름 섞은 과자 맛 같다고 하다가 광야 생활 말미에 가서는 하찮은 식물이라고 폄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서 나는 만나는 한 가지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가지가 넘습니다. 그리고 그 맛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보다 땅에서 나는 만나가 훨씬 더 좋은 만나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그 어떤 믿음의 사람들도 이제 더 이상 하늘에서 만나를 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기 위해 기도하고, 반석에서 물을 내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부활을 모르는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능력도, 기적을 주시는 목적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우리는 이미 매일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보다 더 엄청난 기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권상규 목사(주님의교회)
◇주님의교회는 경기도 용인시에 소재하고 있으며, 권상규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총회 서기와 주님의교회 담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