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사업 매각 논의 막판 진통…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다시 고비

입력 2023-10-31 04:04
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따른 ‘메가 항공사’ 탄생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30일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분리매각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사내이사 한 명이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히는 등 이상 기류가 감지됐는데, 이사들 간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의 최대 분수령으로 불리는 화물 매각 최종 결론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이날 서울 모처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화물 사업 분리매각 여부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결론을 내지 않은 채 정회됐다”며 “이사회는 추후에 다시 열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 일시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사회는 ‘현재 진행 중인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EU 경쟁당국인 EU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에 대한 동의 여부’라는 명칭의 안건을 논의했다. 핵심 내용은 화물 사업 분리매각이었다.

애초 이사회 결정에는 난항이 예상됐다. 직원 반발이 거셌고, 화물 사업을 매각하면 회사 가치하락과 주주가치 훼손 등 배임 소지 우려도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은 상반기 기준 전체 매출의 21.7%를 차지한다. 시장에선 이사회 내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는 얘기도 돌았다. 매각 반대 입장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진 사내이사인 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전무가 갑작스레 이사회 사의를 표한 것도 이사회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상케 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일신상의 사유”라고 설명했다.


이사회는 5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되는데, ‘과반 이상 출석, 출석 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안건을 가결한다’는 규정에 따라 진행됐다. 이사회 구성원들은 오후 2시부터 9시 30분까지 안건에 대해 논의를 벌였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이사회 내부에선 사내이사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을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 결정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의 최대 난관으로 꼽힌다. 만일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EU 경쟁당국이 요구한 화물 분리 매각안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3년간 진행돼 온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매각은 불발된다. 기업결합을 위해서는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EU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사회가 승인을 하게 되면 사실상 EU 경쟁당국의 결합 심사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애초 아시아나 화물 사업 매각은 EC가 요구한 조치 사항이다. 앞서 EU 경쟁당국은 한국~유럽 노선 간 화물 운송 서비스와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등 유럽 4개 노선의 여객 운송 서비스 등의 경쟁이 제한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었다.


대한항공은 이사회가 승인을 하면 슬롯 반납,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매각 내용을 담은 시정 조치안을 곧바로 EC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선 대한항공이 조치안을 낼 경우 EU 경쟁당국이 조건부 승인을 내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자신들이 제시한 요구 사항을 받아들인 양사의 합병을 막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EC의 승인을 받게 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만을 남기게 된다. 3년 전인 2020년 11월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14개국에 기업결합 신고했고, 영국 등 11개국의 승인을 받았다.

한편 대한항공 이사회는 이날 오전 8시 서울 중구 KAL 빌딩에서 이사회를 열고 기업결합 관련 사항과 함께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무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사회는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을 매각하되, 인수하는 측이 고용 유지와 처우개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물 매각이 결정되더라도 적절한 인수자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화주 네트워크 등이 매각 범위에 포함되는지 등도 유심히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