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위험 수위까지 불어난 가계부채를 누르기 위해 고삐를 죄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대출 확대 정책을 펼친 지 불과 1년도 안 지난 상황이라 오락가락 행보에 애꿎은 금융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당과 정부는 지난 29일 당·정·대 고위협의회를 열고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연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 등 위험 상황을 반영해 가산금리를 얹겠다는 것으로 대출자가 상환해야 할 원리금을 늘려 대출한도를 줄이는 효과를 내는 규제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가계부채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보다 수십배는 큰 여파가 있을 것”이라며 관리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은행권도 가산금리를 올리거나 우대금리를 깎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 금융 당국 움직임에 협조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 은행권 여신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분기 가계주택 대출태도지수(전망치)는 마이너스(-) 11로 집계됐다. 이 수치가 0보다 작다는 것은 은행의 대출심사가 엄격하다는 의미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자체를 줄이기 위해 앞에서 끌고 은행권이 뒤를 미는 모양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을 폈다. 지난 1월 출시했던 ‘특례 보금자리론’이 대표적이다. 무주택·1주택자에게 DSR 규제 적용 없이 집값의 최대 80%를 4%대 고정금리로 빌려줬던 이 대출은 30대 금융소비자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 7월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집주인에게 DSR 규제를 면제해주고 은행권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출시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계부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연말까지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던 특례 보금자리론은 지난 9월 돌연 폐지한 데 이어 은행권에는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 종료를 종용했다.
정책 실패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지난 8월까지 팔린 50년 만기 주담대는 8조3000억원어치로 같은 기간 신규 취급된 주담대(28조5000억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우려했던 정부가 특례 보금자리론 출시 등으로 보낸 “빚내 집 사라”는 신호가 대출 수요를 자극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의 급증은 은행권 탓’이라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일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부동산시장 전망 실패”라면서 “금융 당국이 갈지자 정책을 펼치며 수시로 말을 바꿔대는 동안 피해를 보는 것은 금융소비자, 즉 국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