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난 UX라이팅 스타트업 ‘이분’ 박건(35) 대표는 자신을 ‘글쟁이’로 소개했다. 그는 잡지사에서 글을 쓰던 에디터였다. 글로 밥벌이를 하던 중 LG유플러스의 UX라이팅 전문 팀인 ‘고객 언어 혁신 프로젝트’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면서 이 업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
사용자경험(UX)과 라이팅(writing·글쓰기)을 합친 UX라이팅은 온라인 환경에서 이용자가 읽고 이해하는 방식을 고려하며 가장 효율적인 문구를 찾아가는 일이다. 2017년 구글이 이 개념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박 대표가 운영하는 ‘이분’이 처음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스타트업이다.
박 대표는 “(LG유플러스에서) ‘글을 고쳐 보니 글쟁이가 꽤 큰 영향력을 줄 수 있구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퇴고’에 맞춘 글쓰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며 2018년 5월 회사를 나왔다. 직접 차린 회사의 이름 ‘이분’은 2분 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짧고 쉽게 쓰자는 뜻을 담았다. 프로그램 이름도 ‘쉽게’다.
첫발은 내디뎠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문체’를 컴퓨터에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국어국문학 석·박사 출신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문법과 형태소 분석 등 글쓰기 과정을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하는 기술을 만들었다. 3만~5만 문장을 분석해 문체를 파악하고 두 달이면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형태로 받아볼 수 있다.
첫 고객은 금융서비스 플랫폼인 토스였다. 2019년 내놓은 첫 버전 ‘쉽게 1.0’로 A/B테스트를 진행했다. 두 가지 콘텐츠를 내놓고 이용자가 어느 쪽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다. 이분이 제시한 문구는 여기서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사가 늘었다. 현재 현대차, 국민은행, 새마을금고, 케이뱅크, 국민카드, 삼성카드, 카카오뱅크 등 여러 기업이 이분에게 컨설팅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이분의 서비스는 현재 4.6버전까지 나왔다. 이 버전 출시 일주일 만에 매출 3억원을 달성했다. 내년 공개 예정인 5.0버전에는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도입한다.
이분은 난해하기로 손에 꼽히는 관공서 공문도 뜯어보고 있다. 자사 기술로 위화감 없이 술술 읽히는 수 있는 공문서를 작성하는 게 목표다. 현재 경기 용인시가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다.
UX라이팅은 퇴고를 거듭하는 작업이다. 박 대표는 퇴고를 ‘비포장도로를 가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내놓은 글은 개념을 나열하는 수준”이라며 “블로그, 인스타그램, 대본 등 상황에 맞는 글쓰기를 할 수 있더라도 ‘일관성’을 유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글의 일관성 유지는 사람이 작성하는 UX라이팅 현장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각자 취향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플랫폼마다 문체가 ‘우후죽순’이라는 얘기다.
박 대표는 “전문가가 아닌 기획자나 디자이너 등이 UX라이팅을 한다. 특히 카피라이터처럼 ‘느낌’을 쫓다 보면 구성원 모두가 같은 ‘문체’를 갖기 어렵다”며 “하나의 문체를 만드는 것, 모두가 쉽게 ‘UX라이팅’을 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