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실적 악화로 ‘보릿고개’에 신음하던 정유업계가 3분기 반등에 성공했다. 석 달 새 30% 가까이 오른 유가에 정제마진이 개선되며 세 자릿수 넘는 영업이익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나 경유 등 석유제품에서 원유와 운영비 등 비용을 제외한 수치로, 정유업계 이익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그러나 정유업계에선 3분기 반등이 본격적인 상승세로 이어질지, ‘반짝 성과’에 그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처럼 3개월마다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이 출렁이는 상황에서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실적 반등의 요인인 고유가도 자칫 소비 심리를 꺾어버리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가격과 경기 흐름의 변동성이 너무 커서 향후 실적을 예상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30일 연결 기준으로 올 3분기 매출 8조9996억원, 영업이익 8589억원을 거뒀다고 공시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9.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7.9% 늘었다. 특히 직전 분기 영업이익(364억원)과 비교하면 2258.5%나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5454억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HD현대오일뱅크도 3분기 매출 5조8235억원에 영업이익 3191억원으로 지난 2분기 ‘어닝 쇼크’를 3개월 만에 탈출했다. 직전 분기 361억원에 그쳤던 영업이익이 783.9% 뛰어올랐다.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GS칼텍스와 SK에너지 역시 업계의 실적 반등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유업계가 하반기 반등에 성공한 것은 정제마진 회복에 기인했다. 이달 셋째 주 기준 정제마진은 9.5달러로, 2달러 수준에 그쳤던 올 2분기 대비 4배 이상 올랐다. 지난 8월 23일엔 15달러까지 치솟으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정제마진은 통상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잡는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 회복된 여행 수요 등으로 상반기에 쌓였던 재고 역시 상당 부분 덜어낸 상태다.
다만 정유업계는 극심한 변동성을 우려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에 경기 침체 우려가 본격화된다면 석유제품 수요도 급감할 수 있다.
이달 초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던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수요 위축 우려로 84달러선까지 내려앉은 상태다. 오락가락하고 있는 정제마진도 실적을 좌우할 요소다. 정제마진이 30달러에 육박했던 지난해 상반기 정유업계는 12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벌어들였지만, 이후 중국 경기 침체와 러시아의 원유 덤핑 등으로 하반기엔 약 90%의 이익 축소를 겪었다.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도 변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까지 이어지며 국제유가는 들썩이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현실화와는 별개로 시장 심리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극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