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2월부터 시행하는 ‘흑연’ 수출 통제가 미국을 겨냥한 보복성 수단으로 활용되면 국내 배터리 기업도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에 공장을 둔 한국 배터리 기업이 중국에서 흑연을 들여오는 절차가 깐깐해질 수 있어서다. 중국 정부가 수출 허가를 아예 반려할 수도 있다.
흑연의 대표적인 사용처는 이차전지를 구성하는 4대 요소(양·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중 하나인 음극재의 원료다. 특히 제조비용이 저렴한 천연흑연의 경우 매장량이 없는 지역에서는 자급할 수 없어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필수다. 올해 1~9월 기준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입 의존도는 천연흑연이 97.7%, 인조흑연이 94.3%에 달한다. 사실상 전량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셈이다.
한국무역협회는 30일 발간한 ‘중국 흑연 수출 통제의 영향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미국에서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거나 가동 예정인 한국 배터리 제조사는 중국산 흑연을 수입해 쓰고 있는데 수출 허가를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이 흑연을 ‘자원 무기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무협이 2006년 9월 중국이 흑연 수출 통제를 시행한 과거 사례를 분석한 결과 2∼3개월가량 수출 지체 현상을 보인 후 교역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도원빈 무협 공급망분석팀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대중국 흑연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시행 시 일시적으로는 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수출 재개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는 세계 최대 흑연 순수출국인 중국이 자국 내 수요만으로는 공급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기업으로서도 흑연 수출을 통한 판매처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에 공급선을 오래 막을 수는 없다. 이에 우리 기업은 단기적으로 최대한 흑연 재고를 확보하고 중국 외 다른 흑연 생산국으로 수입선 다변화를 꾀하는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천연흑연은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브라질 등 다른 생산국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공급선을 발굴하고 인조흑연은 일본을 대체 수입국으로 검토할 만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미·중 패권 다툼 속에 산업용 핵심 광물을 보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잦은 움직임에 대비해 중국 의존도를 점차 줄여야 한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 관련 품목의 수출도 지난 8월부터 통제하고 있다. 도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흑연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배터리 산업에서 흑연을 대체할 수 있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개발해 공급망 리스크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