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국민연금 종합계획안에는 이전 전문가 논의기구에서조차 제대로 다뤄진 적 없는 방안이 여럿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세대별로 인상 속도를 달리하고, 인구·경제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연금액을 정하는 안에 대해서는 “제도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9일 연금개혁 논의기구에 포함됐던 복수 위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계획안에는 그동안 재정계산위원회에서 정식 논의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3가지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재정계산위는 국민연금 개혁안의 초안 격인 최종보고서에 24가지 시나리오를 담았다. 하지만 복지부는 보험료율(내는 돈)과 지급 개시 연령, 소득 대체율(받는 돈)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제외한 채 국민연금 향후 논의 과제들을 담은 계획안을 공개했다.
대신 복지부는 ‘자동안정화장치’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했다. 이는 인구 상황과 경제 성장률에 따라 연금액을 유연하게 정할 수 있는 제도다. 국내 인구 구조와 국민연금 가입자 규모 등을 고려하면 결국 받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복지부도 이를 의식한 듯 “소득보장 약화 방지를 위한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적었다.
재정계산위에 참여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돌아가면서 본인 의견을 말할 때 일부 위원이 언급하긴 했지만, 안건으로 채택해서 정식으로 논의한 적은 없던 내용”이라며 “다들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자동안정화장치가 조절 장치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어느 정도 받는 돈이 높아야 깎는 폭을 둘 수 있는데 한국은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계획안에서 언급한 ‘확정기여형(DC)’ 전환도 논란거리다. 지금의 국민연금은 급여 수준을 미리 확정하고, 정해진 급여를 지급하는 ‘확정급여형(DB)’이다. 반면 DC 방식은 납부한 보험료에 기금 운용에 따른 운용 이자를 지급한다. 국가가 ‘낸 만큼’의 연금은 보장하겠지만, 기대했던 급여액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재정계산위 논의 당시에도 당장 전환은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관은 “미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예전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DC 방식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공론화 과제로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들도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참여연대와 양대 노총 등으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국가의 재정분담은 온데간데없고 정부가 국민의 연금 깎기에만 안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계획안에 새롭게 포함된 ‘세대별 속도 차등 적용방안’도 반발이 크다. 정부는 청년 세대들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낮고, 공정성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 만큼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속도를 달리 두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역시 재정계산위에서도 다뤄진 적이 없는 내용이다.
한국연금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거가 없는 대책”이라며 평가절하했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은 저축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정을 위해 만든 것”이라며 “노인들한테 일정한 소득을 줘서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건데, 세대별 차등 방식으로 하면 사회 안정화에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이 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 사례는 없다.
결국 정부가 모수 개혁은 빼고 새로운 쟁점만 더한 채 국회로 공을 넘기면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부담은 더 커졌다. 여기에 특위가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 등 다른 연금까지 고려한 고차방정식의 구조 개혁까지 선언한 만큼 합의안을 마련하기가 더 쉽지 않은 구조다.
김 교수는 “재정계산위 논의는 모수 개혁이었기 때문에 보험료와 급여 수준으로 쟁점이 좀 적었다면 국회 쪽은 구조개혁도 같이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합의 가능성은 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정부의 연금개혁 의지는 확고하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