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투자 줄줄이 철회하는 완성차… 배터리 업계 ‘긴장감’

입력 2023-10-30 04:04
게티이미지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예상보다 빨리 꺾이면서 배터리 업계에 긴장감이 감돈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전동화 관련 투자 및 생산 계획을 줄줄이 철회하고 있다. 이들을 고객으로 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전방 수요 둔화, 중국의 저가 공습, 내년 미국 대선 등이 야기하는 ‘복합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됐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는 전기차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국내 배터리 산업 전체가 주저앉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는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1.0% 증가했다고 추산했다. 전기차 판매가 2021년 115.0% 증가했고, 지난해 61.2%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둔화세다.

전기차 확산세가 예상보다 더뎌지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속도 조절에 나섰다. 미국 포드는 계획했던 전기차 투자액 가운데 120억 달러(약 16조3000억원)를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6년으로 예정했던 블루오벌SK(SK온·포드의 배터리 합작회사)의 켄터키 2공장 가동 시점도 연기했다.


GM은 미시간주 전기차 공장 가동 시점을 1년 늦췄다. 2027년부터 일본 혼다와 합작해 ‘저가 전기차’를 만든다는 계획도 백지화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고금리 환경이 걱정된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살 여력이 없다”며 멕시코 전기차 공장(기가팩토리) 착공 일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최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엄중한 상황임을 인정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4분기 들어 주요 고객사의 보수적인 전기차 생산 계획에 따라 물량 조정 가능성이 일부 있다”며 “내년 수요는 기대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부사장)도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단기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도 “전기차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수주 물량 소화 이후 추가 수주에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저가 공세로 국내 업체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주력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배터리업계 1위인 CATL은 올해 1∼8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11.1% 증가한 사용량(54.7GWh)을 기록했다. 점유율은 27.7%를 찍었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LG에너지솔루션(점유율 28.5%)과의 격차를 0.8%포인트로 줄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두 회사의 격차는 7.5%포인트였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배터리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을 공략하는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업체들도 중저가 제품군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2026년 LFP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소재 개발 및 생산 설비 구축을 진행 중이다. SK온은 지난 3월 배터리 3사 중 최초로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했다. 하지만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29일 “당장 내년부터 저가형 전기차 모델 필요성이 커지면서 중국산 LFP 침투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미국 대선도 국내 배터리 업계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더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휘발유 엔진을 계속 허용할 것”이라고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대폭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약속한 보조금 및 세액공제를 노리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황민혁 이용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