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2013년 이후 중국에서는 대대적인 부패 척결 바람이 불었다. ‘호랑이’(고위 관료)와 ‘파리’(하위직) 잡기로 시작된 부패와의 전쟁은 ‘여우’(해외 도피 사범) 사냥으로 확대됐고 부동산, 사교육, 의료계 등을 거쳐 최근에는 군 내부와 기술 분야를 정조준하고 있다. 중국 최고 사정기관인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지난 10년간 조사한 부패 사건만 464만8000건이 넘고 20만7000명의 중앙·지방정부 공무원이 처벌받았다. 조사 대상에 오른 차관급 이상 고위 관료만 553명에 달한다. 부패 근절 활동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시 주석의 정적을 제거하는 효과도 거뒀다.
시진핑 집권 3기 반부패 투쟁은 흔들려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것이 됐다. 시 주석은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식에서도 “부패는 당의 생명력을 위협하는 악성 종양이고 부패 척결은 가장 철저한 자기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사정의 칼날이 시 주석 측근들로 향하면서 리더십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 24일 리상푸의 국방부장, 국무위원, 중앙군사위 위원직을 모두 면직한다고 밝혔다. 리상푸는 지난 8월 말부터 공개 석상에서 사라져 부패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중국군이 지난 7월 부패 신고를 받는다고 발표한 뒤 전략미사일과 항공우주 전력을 담당하는 로켓군 수뇌부가 교체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상푸도 사라진 것이다.
리상푸는 장비발전부장 재임 시절인 2018년 러시아산 무기를 불법 구매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었는데도 시 주석은 지난 3월 그를 국방부장에 앉히며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바 있다. 시 주석은 군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을 향한 군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상푸에 앞서 사라졌다가 면직된 친강 역시 지난해 말 주미 대사에서 외교부장으로, 다시 국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시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던 인물이다. 시 주석은 ‘늑대 외교’의 상징인 친강과 미국의 제재 대상인 리상푸를 집권 3기 외교·국방 투톱으로 내세우면서 대미 강경 노선을 분명히 했다.
이들의 실각은 시 주석에게 상당한 타격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29일 “시 주석이 이들을 직접 제거했다면 만천하에 인사 실패를 인정한 것이고, 다른 세력에 의해 축출당한 것이라면 10년의 정적 제거에도 권력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충복들로 구성된 이너서클에 더욱 밀착하고 의사 결정은 중앙집권화돼 정치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앙기율위는 최근 과학기술부, 공업정보화부 등 5개 부처와 자동차·철강·조선·항공 분야 26개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패 조사에 들어갔다. 시진핑 집권 3기 들어 진행되는 두 번째 반부패 투쟁이다. 앞서 중앙기율위는 지난 3~9월 금융·스포츠·의료 분야에서 사정 작업을 벌여 국유기업 관리 140여명을 붙잡아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최소 36명의 차관급이 낙마했다. 최근 중앙기율위 대변인은 새로운 반부패 5개년 계획을 설명하며 “우리는 아직 부패의 진상을 파헤치지 못했는데 새로운 종류의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패 문제를 연구해온 앤드루 웨드먼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SCMP에 “시 주석은 부패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등 전임자를 탓할 수 없게 됐다”며 “반부패운동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