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마약 문제는 예전부터 있었기에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미치는 파장은 과거와 다르다.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K팝은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의 일탈은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이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생충’의 주연 배우 이선균과 그룹 빅뱅 출신의 지드래곤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잇달아 입건됐다. 이들 외에도 방송인 출신 작곡가 등의 마약 투약 의혹에 대해 경찰이 내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연예계는 초긴장 상태다. 주연급 배우들이 마약 스캔들에 휘말려 활동에 차질이 생기면서 콘텐츠 업계는 벌써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K팝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됐다. 국내 주요 기획사의 해외 매출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하이브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316억원의 63%를 차지하는 6526억원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JYP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는 전체 매출의 절반이 해외에서 나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콘텐츠 수출액은 약 130억1000만 달러(약 17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배우, 가수 등의 마약 투약 사건은 국내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이선균이 주연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국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많은 시청자들의 ‘인생 드라마’로 꼽혀왔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등이 드라마를 극찬하며 K콘텐츠 열풍에 힘을 보탰지만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조롱거리가 됐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포브스 등은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배우조합상을 수상한 배우 이선균이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며 비중 있게 전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선균이 마약 사건으로 촬영을 준비 중이던 드라마 ‘노 웨이 아웃’에서 하차한다”면서 “영화 ‘탈출’ ‘행복의 나라’ 등의 개봉이 예정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K엔터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데 비해 업계 종사자들이 마약 등의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일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예방책을 고민하지도, 피해보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츠는 예전과 다른 위상을 갖고 있다. 커진 영향력이 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라며 “K콘텐츠에 대한 세계적인 정서와 관련해 업계 종사자들의 도덕성이 얼마나 더 중요해졌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배우나 가수들의 일탈이 개인적인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산업 전체에 해가 되는 만큼 얼마나 파장이 있는지 이번 기회에 깨닫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교석 평론가는 “우리 콘텐츠는 해외 시장에서 신선한 느낌을 줘 왔는데 구설에 올라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는 만큼 그간 명목상으로만 있던 책임배상 문제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야 한다. 징벌적인 배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세정 최예슬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