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술계에서 김성희 옵/신 페스티벌 예술감독 겸 계원예술대 교수는 다원예술의 상징적인 존재다. 김 감독은 2002~2005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프로그램 디렉터, 2007~2013년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2013~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초대 예술감독, 2017~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감독을 역임하며 다원예술이 한국에 자리 잡도록 만들었다.
특히 페스티벌 봄은 당시 국내에선 낯선 포스트 드라마 연극이나 렉처 퍼포먼스 등 급진적인 작업을 선보이며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은 김 감독 시절 유럽 중심 예술 담론으로부터 벗어나 아시아 예술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한편 아시아 예술가들의 국제 진출을 지원했다.
다만 2020년부터 옵/신 페스티벌을 이끄는 김 감독은 자신이 안착시킨 다원예술 용어 대신 ‘동시대 예술’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김성희 감독은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컨템퍼러리 신(scene)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다원예술이라고 불리며 겨우 명맥을 이어왔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동시대 예술’에 대한 의식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고 이야기하지는 사람도 많지만 ‘예술이 꼭 친숙해야 하는가?’라고 되묻고 싶다”고 피력했다.
옵/신 페스티벌은 2020년 출범 이래 가을마다 ‘장(Scene)을 벗어난다(Ob)’라는 축제 이름처럼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연극, 무용,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예술을 관객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4회째인 올해는 30일부터 11월 26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콘텐츠문화광장, M극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지난 20년간 동시대 예술의 변화를 가져온 아티스트들의 회고전으로 열린다. 해외에선 윌리엄 포사이스(미국), 로메오 카스텔루치(이탈리아), 제롬 벨(프랑스), 리미니 프로토콜(독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태국), 호추니엔(싱가포르), 오카다 토시키(일본), 엘 콘데 데 토레필(스페인), 마텐 스팽베르크(스웨덴) 등의 작품이 이번에 선보여진다. 또 국내에선 서현석, 박민희, 노경애, 위성희, 남정현의 작품이 준비됐다.
올해 옵/신 페스티벌은 기획자로서 한국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김성희 감독의 20년 궤적을 돌아보는 회고전의 의미도 동시에 지닌다. 김 감독은 “공연예술의 역사를 보면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며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지난 20년간 그 흐름이 이어져 왔다”며 “운 좋게 그 시기에 기획자로서 한국에 동시대 예술을 소개하고 예술계의 변화를 이끄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회고전은 지난 20년을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자리”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 감독은 동시대 예술 기획자의 세대교체를 언급했다. 페스티벌 봄 시절부터 그와 손발을 맞춰왔으며 현재 옵/신 페스티벌을 거의 공동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김신우 프로듀서가 오래지 않아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나섰다. 김 감독은 “시간이 흘러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 환경이 많이 바뀐 만큼 이제 페스티벌을 새로운 형태로 고안해야 할 때가 왔다”면서 “동시대 예술에 대한 미래의 페스티벌은 다음 세대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