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장면을 사람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1년 전 10·29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주현(28)씨는 당시 기억을 꺼내며 이렇게 물었다. 1년이 지나 기억이 조금은 바래고 순서가 헷갈리기도 하지만, 이씨에게 또렷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그는 25일 “나를 포함해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눌려 있었다. 건물 입구를 채운 그 많은 사람의 머리와 손이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던 구조자들이 우리한테 살아달라고 울부짖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평소처럼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예년과 달리 인파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아 당황하던 와중에 군중 사이에 휩쓸렸고, 골목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씨는 참사 현장에서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반신 마비를 겪었고, 여전히 운전하는 것이 불편하고 오래 걷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날 현장에서 병원으로 가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이씨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신체적 손상을 입고도 현장 처치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귀가했다. 트라우마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국가심리지원센터 상담 지원책을 내놨지만 지원 신청을 하지 못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서류 준비 과정이 치료비보다 비싼 상황이 벌어지면서다. 이씨 역시 지난 4월 정부의 치료비 지원이 끝난 뒤 치료를 중단했다. 추가 지원 신청을 위해서는 신체적 손상과 참사 인과성을 입증해야 했는데, 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이를 입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자, 현장 출동 인력에게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의 심리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이태원 참사 이후 현재까지 한 번이라도 심리 상담을 받은 대상자는 1285명이다. 유가족과 생존자, 목격자, 구조자, 일반 국민을 포함한 수치다. 당일 참사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1371명 중 긴급심리 지원을 신청한 경우도 327명(24%)이다. 신 의원은 “유가족, 부상자, 대응인력, 일반국민까지도 참사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 전체의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정부 집계에서 파악하지 못한 피해자가 더 많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소극적으로 피해자를 집계하면서 피해자 목록에 올라가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심리적·신체적 피해를 입었어도 피해자로 인정받은 적 없으니 본인이 피해자라고 자각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했다.
공식 집계에 잡힌 피해자조차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이후부터 지난 5월까지 이태원 참사로 인해 의료비 지원을 신청한 내외국인은 307명이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2월 10일 기준 이태원 참사 의료비 지원 대상자가 381명이라고 밝혔다. 의료비 지원 대상이 되는 이들 중에서조차 70여명이 의료비 지원을 신청하지 않은 셈이다.
이씨는 “국가가 안전 의무를 외면한 채 참사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서 일부 사람들도 그런 태도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생존자임을 밝혀도 주변에서 간혹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며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그 기억을 묻어두지 않고서는 회복과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신영 백재연 성윤수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