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묻어준 친구, 늦게 찾아 미안” 선감학원 피해자 눈물

입력 2023-10-26 04:05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취재진에게 발굴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설립돼 1982년까지 서울의 부랑아들을 수용했던 경기 안산시 선감학원 암매장지에서 인권유린 피해 아동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와 유품 등이 다수 발견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5일 끔찍하고 추악했던 아동 인권착취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유해 매장 추정지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지난달 21일부터 분묘 40여기를 2차 시범 발굴한 결과 선감학원 원생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10개와 단추, 직물 끈 등 유품 27점이 수습됐다. 이곳에는 유해 약 150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해 9월 1차 시굴 당시 분묘 5기에서 치아 68개와 단추 등 유품 7점이 나왔다.

이날 진행된 유해 발굴 언론공개 설명회에 참석한 이모(63)씨는 친구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칼과 허리띠 등을 보자마자 오열했다. 이씨는 1970년부터 5년 동안 선감학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다. 해당 분묘에서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이 과거 바닷가에서 굴을 까먹으며 썼던 칼로 보이는 쇠붙이와 허리띠 버클이 발견됐다.

이씨는 “내가 밤마다 구타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고 ‘너희 부모님을 데려오겠다’며 (선감도를) 탈출한 친구가 얼마 뒤 바다로 떠밀려왔다”며 “친구를 직접 묻었었는데 너무 어렸을 때라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안 나 미안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너를 못 찾아줘서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 외에도 이날 50여명의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유해 현장을 찾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훔쳤다.

이번에 발굴된 분묘의 길이는 대부분 110~150㎝로 깊이는 50㎝ 미만이었다. 가장 작은 분묘 길이는 85㎝에 불과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몸집이 작은 아동들을 가매장 형태로 땅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감식을 담당한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현재까지 나온 치아를 봤을 때 치아 윗부분인 크라운의 발달 정도, 마모 정도를 보면 (매장된 아동의) 나이가 12세에서 15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발굴을 주도한 선사문화연구원은 일부 분묘에서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이유로 암매장 이후 최소 40년이 흐른 데다 토양의 산성도가 높고 습해, 부식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시굴 현장을 보며 그나마 흔적을 파악할 수 있는 치아의 부식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조선총독부가 태평양전쟁 ‘전사’를 확보하고, 부랑아를 교화한다는 명분 아래 1942년 설립했다. 간척사업으로 땅과 연결되기 전에는 외딴섬이었다. 이곳에 강제 입소된 7~18세 아동들은 구타와 가혹 행위,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 특성상 당시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바다에 빠져 사망한 원생만 834명에 달한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12월 2차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경기도에 전면적인 발굴을 재차 권고할 계획이다. 발굴된 유해와 유품은 세종 추모의집에 임시 안치될 계획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날까지 모두 45기 분묘에서 치아 278개와 유품 34점을 수습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