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출판인은 ‘박영선 현상’이라고 불렀다. 1985년 처음 선보인 ‘하나님의 열심’(무근검)은 3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기독출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다. 조주석 목사가 인터뷰한 박 목사의 대담집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복있는사람)은 최근 개정 증보판을 선보였고, 지난 6월엔 박 목사 설교 선집의 네 번째 책인 ‘자유’(복있는사람)가 새로 출간됐다. 합동신학대학원대에서 강의한 ‘신·구약 성경 다시보기’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고, 박 목사 설교의 주요 내용과 용어를 정리하는 앤솔러지 역시 준비 중이다.
설교사역 40년을 맞이한 박 목사를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남포교회 목양실에서 만났다. 신앙의 여정에서 ‘이게 뭔가, 이게 전부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나면 ‘아, 나는 지금 이 지점에 와 있구나, 이게 다가 아니구나’하고 깨닫는다. 연륜과 통찰, 열린 사고를 보여주고 있는 박 목사와 책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설교사역 40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전수 받았던 신앙에서 그래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말하겠다. 제가 자랄 때 한국교회 보수교단의 분위기는 일사각오였다. ‘목숨걸고 신앙지켜 순교하고 천국가자’였다. ‘죽으면 죽으리라’가 대세였다. 저는 계속해서 질문을 품었다. 하나님이 날 안 데려가시는데 어떻게 하나. 살아있으면서 신앙생활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학 시절 부름을 받고 신학을 하게 되면서 성화를 생각하게 됐다. 단순히 거룩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정에서 완벽하지 않다, 시행착오도 많고 자괴감도 크다, 그렇지만 내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나 안 믿나 보거나 잘 믿나 못 믿나에 대해 심판자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실존, 모든 인생에 개입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각각의 생애에 대해 씨름하신다고 생각하고 쓴 책이 ‘하나님의 열심’이었다.”
-믿음과 은혜에서 사역 후반기 자유와 책임으로 나아간다.
“젊을 땐 시행착오와 삐딱함이 있었다. 물론 그걸로 답이 안 된다. 실패하거나 반발하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답을 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궁지에 몰려 보니, 그게 인간의 진실을 확인하는 거더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행운과 능력을 쥐여 주셔도, 인간이 하나님 없이 만들 수 있는 건 남을 지배하는 것, 결국 폭력에 불과하더라. 그걸 아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고, 찬송이 되게 한다는 약속, 그 약속을 붙잡고 우리 스스로 존재와 성품과 실력으로 나아갈 때 자유를 주시고 책임을 주신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꾸짖는 정도가 아니라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하며 못났다는 걸 확인시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하는 영광과 승리를 위해 분발하게 만드신다는 것. 거기서 시간과 자유라는 주제가 등장하게 됐다.”
-젊은 시절 설교를 스스로 ‘해병대 상륙작전 같았다’고 회고했다.
“예전 한국교회는 거의 율법주의였다. 기독교 신앙의 잣대가, 잘 믿느냐 못 믿느냐의 기준이 도덕이었다. 주일 성수, 십일조, 기도 많이 하기 등으로만 돼 있어서 한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는 전혀 잣대가 없었다. 교회에 모였을 때는 다 착하고 잘 웃는데, 세상에 나가선 험한 사람들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저희 부모를 포함해 친구들 다 그랬다.
이게 뭔가. 천국 가는 게 다인가. 그럼 현실은 왜 필요한가. 빨리 천국 가버리는 것이 답 아닌가 이렇게 따져 묻게 된 거다. 잘하면 보상을 받고 못하면 벌을 받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종교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와서 만날 회개만 하는 종교, 잘못을 지우기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완성의 자리로 나아가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실패를 넘어서 실력으로 하나씩 자라나는 것, 이게 하나님이 신자 개인과 인류 역사에 요구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기르시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성도나 교인이란 용어보다 신자란 표현을 많이 쓴다.
“신자, 믿는 자란 말엔 적극적 책임과 명예를 강조하는 뜻이 들어있다고 본다. 성도라고 하면, 구별하는 차원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란 뜻인데, 그럼 정체하게 된다. ‘난 여기 들어와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정체된 개념을 갖지 말고 나아가자는 뜻이다.”
-한국교회가 미래 이슈를 선도하지 못하고,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반대 운동이 많다고 한다.
“실력이 없어서 그렇다. 죄 사함을 받는다는 구원론에만 머물지 말고 죄를 사하는 적극적 이유, 이제 영광과 명예의 자리로 가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출애굽 사건처럼 꺼냄을 받은 이야기만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 영광과 명예의 존재가 되는 일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대단히 빈약하다. 무얼 하려고 나를 꺼내 주셨는가, 구원해 주셨는가, 매일매일 삶이 죄와 싸움이다 정도가 아니라 성숙을 위한 싸움이 필요하다. 자기 판단, 자기 이해에 대해 배우는 거다.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를 길게 이어가시며 못 볼 꼴도 보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하라고, 분별과 지혜와 실력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분별과 지혜와 실력과 관련해 경기장의 비유를 말씀한다.
“율법은 이제 경기장이다. 율법은 양심이나 잘못을 확인시키는 기준이 되지만 그걸로 잘할 순 없다. 부정적 기준에 불과하니까. 여기엔 칭찬이 없다. 자기가 잘못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나는 반칙을 하지 않았다가 된다. 신앙생활이 여기에만 머물면 안 된다.
규칙만 준수하는 게 아니고 경기를 잘해야 한다. 그게 뭐냐면 쉽게는 성령의 열매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다. 더 중요한 건 용서와 회복이다. 잘못을 정죄하는 심판과 사망이란 선고에서 용서와 회복과 부활이 있다고 말하는 것. 이건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처럼 단순히 돕는 게 아니라 영적 인간은 이래야 하지 않냐, 이걸 세상에 인격과 존재로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