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가 국가 원수 대우한 ‘재계 풍운아’

입력 2023-10-26 04:07
동아그룹을 재계 순위 10위 기업으로 키웠던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동아방송예술대 제공

세계 최대 규모 대수로 공사를 성공시키며 동아건설을 굴지의 건설사로 일궜던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동아그룹 최준문 창업주의 장남이다.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 경제학과, 미국 조지타운대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동아콘크리트 사장으로 취임하며 경영일선에 나섰다. 2년 뒤 그룹의 주력 기업인 동아건설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후 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 등을 거쳐 78년 동아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동아그룹은 83년 리비아에 진출해 단일 토목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대수로 공사를 수주했다. 사하라 남부에 매장된 지하수를 끌어올려 리비아에 공급하는 공사였다. 동아건설은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 최고 건설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고인은 당시 리비아 최고지도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국가 원수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재계 풍운아로 불리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이 이끄는 동아그룹은 재계 10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때 계열사가 22곳이었다. 동아건설이 지은 성수대교가 94년 붕괴하면서 신화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3년 뒤 외환위기로 금리가 폭등하고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사세가 크게 기울었다.

고인은 98년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사임했지만 회사도 버티지 못했다. 동아건설은 그해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갔지만 2001년 파산했다.

성수대교 붕괴 이듬해인 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법원에서 실형을 받았지만 97년 사면됐다. 2004년 분식회계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2008년 다시 사면됐다.

최 전 회장은 85년부터 학교 법인 공산학원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 등을 운영하는 법인이다. 81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와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88년 서울올림픽 유치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