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와 소통하며 일군 희망, 여행 가이드 되고 싶어요”

입력 2023-10-26 04:05
이현(왼쪽 가운데) 한국월드비전 부산사업본부장 등 관계자들이 지난 5월 부산광역시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 사무실에서 ‘꿈꾸는 아이들 사업’에 지원한 자립준비청년들을 면접하고 있다. 한국월드비전 부산사업본부 제공

#1. 부산에 사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민혜나(가명·25)씨는 지난해 5월 ‘취준생’(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컸다고 했다. 민씨는 부산광역시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 직원으로부터 국제개발구호기구 한국월드비전(회장 조명환) 부산사업본부가 진행하는 ‘꿈꾸는 아이들 지원 사업’(꿈 사업)에 대한 정보를 들은 뒤 사업에 신청해 선정됐다.

이후 주거 보수비(300만원)와 자기계발 지원금(200만원)을 받은 민씨는 제일 먼저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하던 집수리에 나섰다. 태어나서 처음 식탁과 침대 등 새 가구를 집에 들이기도 했다.

월세(5만원)가 저렴한 청년전세임대주택에 살아 다른 자립청년보다 주거비 걱정은 한시름 놓았지만 낡은 집은 ‘잠만 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민씨는 집을 깔끔하게 단장한 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현관과 주방의 낡은 가구를 대거 교체했고 시트지를 붙이고 문고리를 바꿨다”며 “식탁과 침대를 새로 장만하니 확실히 집에 머무는 시간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자기계발 비용은 일본어와 피아노를 배우는 데 사용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일본어 학원에 등록하고 10개월간 매일 한 시간씩 일본어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했다. 사업에 선정된 직후 한 토목회사에 취업한 그는 월드비전을 통해 만났던 멘토와 소통한 경험도 소중하다고 했다. 민씨는 “인생 선배인 멘토께서 고민을 잘 들어주시고 꼭 필요한 말씀도 해주셨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다른 자립 청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2. 지난 5월 불투명한 미래로 절망하며 살던 이윤기(가명·25)씨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지원한 꿈 사업에 선정된 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 보육원에서 퇴소한 그는 대학에서 배운 이탈리아어를 살려 지난해 7월부터 3개월간 이탈리아 현지 식당에 취직해 인턴 경험을 쌓았다. 그곳에 계속 남고 싶었지만 계약 연장에 실패하면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에 선정된 이씨는 지원금으로 그동안 미뤄둔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으며 이탈리아어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이씨는 “지원을 받기 전만 해도 절망적이고 막막했는데 멘토와 소통하면서 희망이 생겼다”며 “멘토로부터 정서적으로 지지받는 느낌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또 “미래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면 언젠가 제게도 기회가 올 거라 믿는다”면서 “잘 준비해 여행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포부도 밝혔다.

한국월드비전이 지난해부터 자립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꿈 사업’이 당사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2013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동을 대상으로 꿈 사업을 시작했던 한국월드비전은 지난해부터 서울·부산·광주 본부를 중심으로 자립 청년까지 사업 대상을 확대했다.


지난 23일 부산 연제구 월드비전 부산사업본부 사무실에서 관계자를 만나 꿈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꿈 사업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10년 전부터 꿈 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이현 부산사업본부장은 심주영 부산광역시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장으로부터 들은 멘트가 뇌리를 스쳤다고 했다.

“누구보다 자립 청년들에게 꿈이 필요하다”는 심 센터장의 조언에 이 본부장은 “‘자립 청년은 혼자서 꿈을 꿔야 하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며 “지난해 센터와 협약을 맺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지원으로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산사업본부는 자립 청년들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인 불안정한 주거 환경과 진로 선택을 위한 경험의 기회가 적은 현실에 주목해 사업을 발전시켰다. 올해는 맞춤형 여가 지원 활동인 ‘여가포텐’ 사업도 시작했다. 자립 청년들이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기 성장 계획서를 작성하고 계획을 구체화하는 것까지 돕기 위해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멘토들과 소통하며 지원군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부산에서는 84명(전국 128명) 자립 청년들이 이 사업에 선정돼 미래 청사진을 그리며 도전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사업의 특징에 대해 “지속적인 사례 관리를 통해 자립 청년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분야를 찾도록 돕고 교육 수료 후에는 취업하는 데까지 필요한 장·단기 목표도 세울 수 있다”며 “이 과정을 돕는 멘토들이 자립 청년의 ‘비빌 언덕’ 역할을 하고 있다”고 꼽았다.

그러면서 “아동 양육시설(보육원) 아이들까지 대상을 확대해 더욱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탐색·도전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이들이 자신의 녹록지 않은 고난을 극복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