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공식화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거주·이전의 자유와 관련된 위헌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성범죄자 입소 시설의 지역주민 반대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다만 성범죄자로부터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법무부도 거주지 지정 방식이 현 시점에서의 최선책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법무부가 24일 공개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법의 핵심은 출소한 고위험군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국가 등 운영 시설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조두순, 김근식 등 아동 대상 성범죄자 출소로 반복됐던 지역사회의 불안과 혼란을 해소하는 데 목적을 뒀다.
문제는 법안 추진 과정에서 제기된 ‘위헌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해진 형기를 모두 채우고 나온 사람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것은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14조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개된 제정안은) 학교 등으로부터 일정 거리 내 거주를 금지하는 방향이었던 기존 논의 내용보다 더 강력하게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주지 제한이 사실상 이중처벌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또다시 기본권을 제한하는 사회적 불이익을 주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성범죄자 수용 시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반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범죄자 수용 시설을 짓는다면 주민들이 찬성할 리 없는데 어디에 지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이런 논란을 감안해 거주지 제한 명령 대상을 엄격히 정했다. 13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3회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전자감독 대상자 중에서도 징역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고위험 성범죄자’에 한해 제정안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거주지 제한을 위해 보호관찰소, 검사, 법원 3단계를 거치도록 한 것도 거주지 제한 명령이 남용되는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정부는 과도한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어떤 장소에서 하루 종일 못 나오게 하고 자물쇠 잠그는 개념이 아니다”며 “주거지를 정해주는 정도는 우리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거주지 제한 명령은 형벌이 아닌 보안처분이라 이중처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지역사회에 성범죄자를 그냥 두고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할 수는 없는 문제”라며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이는 만큼 향후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할 수 있느냐의 차원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키워드 제시카법=2005년 성범죄 전력이 있는 아동 대상 성폭행범에 의해 목숨을 잃은 9세 소녀 제시카 런스포드(Jessica Lunsford)의 이름을 따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제정한 법. 12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게 출소 후 평생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학교·공원 주변 300~600m 이내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 현재 미국 30개 이상 주에서 시행 중.
임주언 박재현 신지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