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기부는 혼자 아닌 가족 전체가 함께 완성해가는 것”

입력 2023-10-25 03:04
유산 기부는 후손들의 동의로 완성되며 가정의 화목이 절대적 조건이다. 사진은 3대가 모여있는 가정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남부 지방의 모 대학에서 가르치는 A교수는 시가 2억원대 아파트에 거주한다. 그는 지난해 언론을 통해 역시 교직에 있던 부친의 서울 아파트 유산 기부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아파트보다 대여섯 배 높은 가격의 유산 기부 결정에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 교수는 주말마다 예닐곱 시간을 운전해 수도권에 있는 부모님 댁을 찾아 문안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부친은 “아들이 자신의 주거 환경을 생각하면 섭섭할 수도 있지만, 내 뜻을 존중해 주고 주말마다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유산 기부는 나 혼자가 아닌 가족 전체가 하는 일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산 기부는 자녀를 비롯한 후손들의 동의로 완성된다. 때문에 가정의 화목이 절대적 조건이다. 본인이 일군 재산으로 유산 기부를 결정하고 유언장으로 공증하고 심지어 가족과 함께 유언장 작성 과정을 영상으로 남겨도 사후 후손이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그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류분은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상속인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가족주의가 굳건한 우리나라는 유언장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남아있는 후손의 권리 또한 인정하고 있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민법상 엄격한 형식과 요건과 절차에 맞춰 유산을 기부하더라도 상속분이 부족하면 자녀는 유류분 제도에 따라 유류분 반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유류분 청구 기간은 본인의 상속분이 부족함을 안 날로부터 1년, 고인의 사망일로부터 10년 이내”라고 덧붙였다.

이는 유산 기부를 돕는 소규모 NGO 입장에선 늘 소송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뜻이 된다. 고인의 숭고한 의지에 따라 유산을 기부받았고, 범죄에 연루되거나 비윤리적 행위와도 관계없는 것이지만, 유산 기부를 받았다고 소송 대상이 되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NGO로서는 소송에 대응할 인력과 비용 자체가 부족하다. 유산 기부가 부동산으로 이뤄졌는데 유류분을 현금으로 반환해야 할 경우 거액의 현금을 융통하는 일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NGO 단체 특별후원팀장은 “비영리단체에서 고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후손들인 상속인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 맞대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사전에 상속인의 유류분을 고려하는 등 소송을 피하면서 유산 기부를 조언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유산 기부는 생전에 나눠서 ‘자녀와 함께’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미국의 자선단체들처럼 유산 기부를 떠올리는 시점에서부터 자녀 교육을 동시에 권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국민일보가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 시즌2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오성택 새한디앤피 대표, 박남진 간석목재산업 대표, 조용근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교회 개척을 위해 기부한 일본인 모녀 이야기까지 자녀들의 나눔 동행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발굴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녀 부자 모녀 사이의 이들은 한목소리로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재산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습관”이라고 강조한다.

우성규 조승현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