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규모 발표를 미루고 의료계와 협의하기로 하면서 의정 간 정면충돌은 피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증원’을 상수로 두고 협의 주체 다양화도 모색하고 있어 논의 과정 곳곳에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22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다음 달 2일 제15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포함한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양측 간 괴리가 커 당일 회의에서도 합의된 결과 도출은 요원한 상황이다.
이에 복지부는 의료계는 물론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의대 증원 논의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초 의협은 내부적으로 202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했던 인원 350명(정원의 10%) 수준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협상에 나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최소 1000명 이상’ 증원 방안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의협은 ‘증원 불가’로 맞대응했다. 의협은 정부가 정원 확대 규모를 확정해서 발표할 경우 전체 의사가 파업에 돌입하는 단체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며 강경 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의협은 대화 창구를 의협 외 주체로까지 열어놓은 건 ‘9·4 의정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정부는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등의 내용을 포함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려다 의사들의 총파업으로 정책을 폐기했다. 이때 의사들의 현장 복귀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의협과 ‘의대 증원 등 4대 정책 방향에 대해 협의체에서 논의한다’라는 내용의 의정 합의를 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풀어야 한다”며 “협의체에서 일치된 의견을 만들어서 보정심에 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의협과 지난 10개월간 14차례 논의를 진행하고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정 합의 위반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지난 19일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하며 “국민과 환자 단체, 전문가 의견도 수렴하겠다”고 언급했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 입학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부터 늘리려면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모집 요강에 반영해야 한다. 현재 공공의대 등 의대 신설 방안보다는 정원 50명 이하인 기존의 ‘미니 의대’를 키우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1000~3000명 규모’로 확대 폭이 커지면 교육 여건을 고려해 의대가 없는 지역에서의 신설도 검토될 수 있다.
대학들은 올 연말까지는 의대 증원 관련 밑그림이 제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입학 정원뿐 아니라 교원 채용이나 시설 확충 등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의료계 협의를 거쳐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반드시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대 증원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