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사기관 34곳이 회원으로 가입한 한국조사협회(KORA)는 정치·선거 여론조사에서 자동응답서비스(ARS) 방식을 없애고 사람(조사원)이 진행하는 전화면접 조사만 시행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한국조사협회 소속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하는 대통령 국정 지지도, 여야 정당 지지율, 총선 관련 여론조사 등에 이 기준이 적용된다.
한국조사협회는 “특히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 전송해, 녹음된 목소리 또는 기계음을 통해 조사하는 ARS는 과학적인 조사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통신 환경마저 훼손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조사협회에는 한국갤럽·넥스트리서치·리서치앤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한국리서치 등 주요 여론조사기관이 다 포함돼 있어 이번 결정이 내년 총선 여론조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여야는 이번 발표가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전화조사가 여당에 유리한 경향이 있다”면서 “이번 한국조사협회 발표 과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을 경우 여론조작일 수 있기에 확인해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조사협회와 다른 단체인 한국정치조사협회(KOPRA)는 “ARS가 더 정확하다”고 반박했다.
한국조사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일고 있는 정치·선거 여론조사 신뢰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자체적으로 정치·선거 전화 여론조사의 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한국조사협회는 ARS 단독 조사는 물론 ARS와 조사원 면접조사의 혼용도 허용치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조사협회 관계자는 “ARS는 거짓말을 해도 통제를 할 수 없어 초등학생이 선거 여론조사에 답하는 경우도 있다”며 “또 기계음이 조사를 하다보니 응답률이 떨어져 정치 고관여층만 참여하게 되는 왜곡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조사협회는 앞으로 소속 업체가 ARS 조사를 할 경우 이사회를 통한 제명 등 강력한 조치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조사협회는 또 전국 단위 전화 면접조사를 할 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선거 여론조사 기준상 응답률은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할 경우 최소 10% 이상, ‘RDD’(전화번호 임의걸기)를 이용할 경우 최소 7% 이상을 달성하기로 했다.
휴대전화 가상번호는 3개 통신사에서 조사 시점에 개통돼 있는 전화번호를 제공받는 방식이다. 지역·성별·연령대 등 개인정보도 함께 제공돼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RDD 방식은 가상의 전화번호를 생성해 무작위로 전화하는 것이라 틀린 번호가 많고, 개인정보도 미리 알 수 없어 응답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조사협회 관계자는 “응답률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라며 “다만 객관적인 조사 여건이 악화돼 응답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 기준이 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정치조사협회에 소속된 리얼미터 등 19개 회사는 이 같은 한국조사협회의 발표를 반박했다. 한국정치조사협회 소속 한 업체 관계자는 “각 당의 싱크탱크도 ARS를 선호할 정도로 실제 결과는 ARS가 더 정확하다”며 “한국조사협회는 이전에도 ARS 조사를 안 한다고 했는데, 과거의 경우 선거가 임박하면 한국조사협회 회원사 절반 이상이 후보자들에게 ARS 견적을 내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양쪽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한 업체 관계자는 “전화조사는 1300만~1500만원이 들어 한국조사협회 소속 대규모 업체들이 해온 반면 ARS는 300만~500만원만 받기 때문에 한국정치조사협회에 소속된 소규모 신생 회사들이 많이 한다”며 “값싸고 빠른 ARS가 시장의 주류가 되자 여론조사업체 간 경쟁이 분출된 상징적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환 박성영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