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63층 높이의 생산 탑(VCV타워) 최상층에 올라 동쪽 창밖을 내다 봤다. 왼쪽으로 인구 8만명 도시의 소형 아파트와 논밭이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른쪽엔 무게 최대 1만t에 달하는 초대형 전선을 생산하는 공장들(해저 1~4동)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 19일 LS전선의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 생산거점인 강원도 동해공장을 찾았다. HVDC는 장거리 송전에 따른 전력 손실을 줄이는 데 특화한 기술이다. 친환경·인공지능(AI) 전환은 전력을 더 멀리, 더 효율적으로 보내는 해저케이블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프리즈미안(이탈리아), 넥상스(프랑스), NKT(독일), 스미모토(일본) 등과 전 세계 HVDC 해저케이블 시장을 과점 중인 LS전선은 ‘생산량 증대’ ‘풀 밸류체인’ 구축에 나섰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 현지 공장을 세워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는 2050년까지 지구를 다섯 바퀴 감을 수 있는 길이(22만 9000㎞)의 해저케이블이 신규로 포설된다고 추산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전기차 이용 증가는 전력 수급을 ‘빡빡’하게 만든다. 전력 공급을 확충하려고 새로 짓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소는 다량의 해저케이블을 요구한다. 전선업계에 따르면 204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해저케이블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LS전선은 동해공장의 생산 역량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해저 1~3동을 100% 가동 중이고, 지난 5월 HVDC 해저케이블 전용공장인 해저 4동을 완공했다. 동해공장의 생산능력은 기존 대비 50% 늘었다. LS전선은 지난 8월에 1555억원을 추가 투입해 해저 5동도 짓겠다고 발표했다. 여상철 동해공장장은 “내년 7월부터 해저 4동의 가동률도 100%(현 가동률 70~80%)에 이른다”고 말했다.
해저 4동은 높이 172m에 이르는 초고층 VCV타워(수직연속압출시스템)를 포함한다.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다. 탑의 높이가 높을수록 고품질(길이가 긴) 전선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날 해저 4동에선 대만 ‘하이롱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납품할 해저케이블을 생산하고 있었다.
LS전선은 시공 능력 내재화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2월 자회사 GL마린으로부터 8000t급 해저케이블 포설선 ‘GL2030’을 390억원에 샀다. 이날 동해항에 정박한 GL2030에선 길이 7.2㎞의 완제품을 싣고 있었다. 5.8m 높이 배의 꼭대기에서 해저케이블을 떨어뜨려 3000t 용량 철제 턴테이블에 동그랗게 쌓았다. 이 제품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로 간다. 비금도 태양광 단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육상으로 보내는 매개체가 될 예정이다.
LS전선은 해외공장 설립에도 전력을 기울인다. 대규모 해저케이블은 부피·무게 때문에 운송비가 판매가격의 15~20%를 차지한다. 제조 역량을 갖췄더라도, 미국 유럽 등으로 제품을 싣고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형원 LS전선 에너지·시공사업본부장(부사장)은 “미국에서 공장 건설을 확정한 상태다. 동해공장의 50%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 공장은 검토 중에 있다. 영국에서 HVDC 해저케이블을 생산해 (유럽) 내륙 쪽으로 수출하는 형태를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LS전선아시아는 베트남 PTSC(베트남 국영 석유·가스 기업 페트로베트남의 자회사)와 현지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상호 LS전선아시아 대표 겸 LS전선 재경·구매본부장(CFO)은 “워낙 성장산업인데다, 해저케이블 산업이 신재생 에너지 전환과 관련이 있어 금융 지원을 한다든지, 합작하자고 제안하는 회사가 넘쳐난다”고 강조했다.
동해=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