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와 전쟁,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간은 ‘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곤 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계적 조직신학자인 미하엘 벨커(76)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명예교수가 방한했다.
벨커 교수는 지난 20일 경기도 과천소망교회(장현승 목사)에서 열린 기독교학술원 해외 석학 초청 강연회에 강사로 나섰다. 그는 ‘성령과 창조’ 제목의 발표에서 “하나님 홀로 자연과 역사를 형성한 것이 아니다”며 “특정 사건을 두고 하나님을 첫 번째 또는 궁극적인 원인자로 규정하는 전통적 관념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벨커 교수는 하나님이 피조물에 부여한 자유와 자율적 능력을 언급하면서 “우주와 역사는 하나님과 더불어 피조물에 의해 함께 형성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피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존재 의미가 격하되는 것은 아니다. 벨커 교수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유한성, 덧없음, 고통과 괴로움, 무력감, 무관심, 악의, 폭력, 변덕스러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영과 말씀을 통해 오신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성경에 나타난 해방의 메시지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벨커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사도행전 2장을 예로 들며 “성령은 명백히 가부장적인 고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부여됐고 노인 중심적인 사회에서 노인과 젊은이 모두에게 부여됐다. 노예제가 있던 사회에서 남녀 종들 모두에게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세상의 고통과 비탄 속에서 새롭고 선한 일을 창조하는 능력에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수많은 자선 행위, 정의와 자비의 실천, 병자에 대한 치유, 교회 안팎에서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단체, 증오와 거짓과 폭력의 비참한 결과에 대한 인도주의적 경고 등 예언자적으로 표현된다”고 덧붙였다.
벨커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것은 단순히 사후 세계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며 “지금 여기에서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것, 선하고 창조적이며 유익을 끼치는 행동을 통해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벨커 교수는 ‘희망의 신학자’로 불리는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계승자로 불린다. ‘창조와 현실’(대한기독교서회)을 저술했고 현재 국제학제간신학연구소(FIIT)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과천=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