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강화도에서 중증장애인들의 거주와 직업 자활을 돕는 김종호(58) 예은순복음교회 목사의 사무실 한쪽에 걸린 액자에 적힌 문구다. 김 목사가 누가복음 17장 10절에서 따온 구절이다.
그는 장애인 섬김 사역에 나서게 된데 대해 “선교 차원에서 사역에 임하는 것도 있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그저 말 그대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 목사는 2004년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내 지금의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2007년 11월 사회복지법인 예닮을 세웠고, 이듬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을 개원했다. 이후 사역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현재 52명의 중증장애인이 머물고 있다. 이들이 머무는 주거공간 옆으로는 제과·제빵이 가능한 직업재활시설도 운영 중이다. 지난 11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인천 지역 특수학교 학생 10여명이 직접 제과·제빵을 체험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이곳 쿠키는 서울의 한 유명호텔에서 기술을 전수해줘서 생산하고 있다”며 “중증장애인 23명이 근무 중이며, 하루에 보통 300~500개의 쿠키와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 목사가 중증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신학대 졸업을 1년 앞둔 1988년도 무렵이다. 당시 목회 방향을 놓고 고민하며 기도원에 올라가 기도하던 중 신명기 14장 말씀이 와 닿았다. 고아와 과부, 객과 같은 이들을 섬기라는 해당 말씀 구절에서 ‘객’이 눈에 들어왔다.
김 목사는 “이 시대의 ‘객’, 나그네가 누구일까를 생각하던 참에 당시 열린 장애인올림픽 소식이 눈에 띄었다”며 “이 땅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된 장애인들이 바로 이 시대의 나그네가 아닐까 싶어 관심을 두고 사역하게 됐다”고 밝혔다.
1994년부터 6년간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 장애인대교구에서 장애인 성도를 비롯해 무의탁 어르신 성도 등을 위한 사역에 매진해 온 이후 지금에 이르렀다.
예닮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이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나들이나 문화, 스포츠 활동 등 다채로운 체험과 외부활동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프로 야구·배구단과 각각 결연해 스포츠 관람에도 종종 나서고, 뮤지컬 관람도 한다. 시설 내부에서는 보치아 경기나 원예치료 프로그램 등도 진행한다.
김 목사는 “당장 다음 주에도 강원도로 나들이를 간다”며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인 만큼 인지 개발보다는 이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데 초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7년 전쯤 뇌 병변을 앓는 한 40대 지적 장애 여성의 눈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확신하게 됐다. 그는 “해운대 바다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누군가의 동행이 있어야 하는 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조차 큰 기쁨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돕는 일 역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장애인 자활의 마지막 단계는 직업을 통한 자활이라 생각한다. 재가장애인 등을 위한 직업재활시설 운영에도 힘을 쏟는 이유다. 현재 이곳에서는 제빵사와 커피 바리스타 등 30명의 장애인이 근무 중이다. 이 중 23명은 집에서 직접 출퇴근한다. 김 목사는 “중증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자신이 고령이 됐을 때, 세상을 떴을 때 남겨진 자식에 대한 부분이다”며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직접 출퇴근하며 직장 생활을 통해 번 돈으로 각자의 필요를 충족한다는 점에서 직업 재활은 장애인이 진정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또 지역 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자리에 시설을 세우기 전 그는 마을 이장과 어르신들을 수차례 찾아뵈며 사역을 향한 진심 어린 뜻을 전했다. 결국 지역 사회는 젊은 목회자의 마음을 받아줬고, 김 목사는 지금도 주기적으로 이들을 섬기며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김 목사의 시선은 이제 장애인과 가족 모두를 위한 요양원과 장애인을 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센터 건립을 향해 있다. 사회가 변해감에 따라 사회복지와 다문화 사역에 헌신할 목회자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낮은 자의 마음, 주님의 마음으로 소외된 이들을 섬기겠다고만 하면 하나님이 정말 역사하시더라”며 “소명을 향한 열정만큼 중요한 것이 사역의 전문성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충실히 사역의 전문성을 기르는 일에 몰두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선의로 ‘장애우’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앓는 일반인처럼 장애인 역시 정서·신체적으로 연약한 부분이 있을 뿐”이라며 “그들을 더불어 살아가는 동반자이자 하나님 형상에 따라 창조된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달라”고 전했다.
인천=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